세법에 따라 과세권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 세무공무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세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납세자.
이 둘 사이는 화해가 힘든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고충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서로 한발씩 다가선다면 세금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불필요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 강소라 조사관(사진)은 "억울한 마음에 지방청에 방문하는 민원인을 만나 과세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개인사, 가족사를 듣고있다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며 "한참을 경청하고 공감을 표하면서 과세의 적법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들어줘서 고맙다'며 납득하고 돌아가곤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납세자의 목소리가 작든 크든 모두 귀를 기울이고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 납세자들도 국세청 직원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9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강 조사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악성민원에 대한 사례와 대책을 알아보고 친절민원 응대로 인한 보람있었던 일 등 국세공무원으로서의 그의 삶을 들어 보았다.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 강소라 조사관은 인터뷰를 통해 "납세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과세의 적법성을 설득한다면 납세자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는지, 무슨 일을 담당하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과세쟁점과 조사절차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의 업무 특성상 납세자와 부딪히는 일들이 자주 발생할 것 같은데, 힘든 점이 무엇입니까? 직접 겪었던 민원 중에 힘들었던 사례는 무엇입니까?
☞ 납세자가 관할 세무서의 업무처리에 대한 불만이 해결되지 않아 상급관서인 지방청을 방문하는 경우, 납세자는 이미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감정이 격앙된 상태가 대부분입니다.
응대하는 직원은 고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납세자를 진정시키고 민원내용을 경청해 과세와 관련된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불복 등 구제절차나 정상적인 업무처리임을 안내해야 합니다. 또 이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과거 재산세과 조사계에 근무할 당시,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당 감면 혐의로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납세자에게 확인된 증빙 등으로 거주 요건이 미비해 과세함을 납세자에게 안내하자 납세자의 인척분이 매일 전화를 걸어와 과세에 대한 불만을 욕설과 폭언으로 표출한 바 있습니다.
근무 중 전화기에 인척분의 전화번호가 뜨면 마음이 답답해져 큰 숨을 들이쉬고 전화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양도토지에 직접 와 보지도 않고 과세를 한다며 기존의 행정기관에 대한 불만까지 토로했습니다.
비교적 소액의 과세였으나 납세자에게 과세에 대한 적법성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동의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충남에 소재한 양도토지에 출장을 갔고, 납세자를 면담해 과세에 대한 적법성을 설명하고 과세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 강소라 조사관은 "보람을 찾기 위해 봉사활동에 종종 참가한다"며 "'국세청사랑나눔봉사단'을 통해 재활원을 찾아 음악, 춤, 마술 등의 공연을 한다"고 말했다.
Q.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납세자도 문제이지만 이를 국세공무원에게 온전히 짊어지게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생기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악성민원은 보통 정당한 행정처분 등에 승복하지 않고 폭언, 담당자 징계요구 등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민원을 말합니다.
이때 반복적 민원 제기자는 이미 현행 법령이나 규정으로 민원제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을 인지하고도 일방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로, 서울청의 경우 민원인이 동일한 내용으로 몇 년간 수 백, 수 천건의 반복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관련 직원은 근무 의욕이 저하되고 또한 다른 납세자의 정상적인 민원처리가 지연 처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Q. 평소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 동료 직원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누기도 하고 틈틈이 운동을 합니다.
국가 재원을 조달하는 업무 성격 상 과세 및 징수의 역할이 크다보니 나누는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싶어 봉사활동에 종종 참가합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국세청사랑나눔봉사단'에서는 노력 봉사뿐 아니라 재능 기부 형태로 직원들이 음악, 춤, 마술 등으로 재활원을 찾아 가는데 재활원생의 환한 웃음에 같이 행복해지는 마법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Q. 업무를 하며 보람을 느낀 일은 무엇입니까? 악성민원 말고도 가슴 따뜻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음식점을 운영하던 중년의 여사장님이 간이과세자에서 일반과세자로 과세유형이 전환된다는 통지서를 받고 흥분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담당직원이 매출액 증가로 과세유형 전환대상임을 설명했지만 십여년간 남편의 병수발과 생계를 짊어진 가장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여자분은 "힘들다. 죽어버리겠다"며 사무실을 뛰쳐 나갔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납세자는 아니었지만 저도 일상이 분주한 직장맘이다보니 여자분의 하소연이 안타깝게 들려왔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여자분 뒤를 따라 갔는데 여자분은 이미 세무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다급히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여자분을 옥상에서 내려 오도록 했고 여자분을 진정시켜 돌려 보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고 저는 놀란 나머지 허리에 담이 걸려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방청에 방문하는 민원인과 상담을 하다보면 과세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관련된 개인사, 가족사까지 얘기를 하시는 경우가 많아 이를 경청하고 공감하다보면 장시간이 훌쩍 흘러갑니다.
한참의 경청 끝에 민원인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과세의 적법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들어줘서 고맙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니 속이라도 시원하다"며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볼 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Q. 마지막으로 조세일보 독자와 납세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국세청 직원들은 국가재정 확보라는 중추적 역할 수행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납세자의 목소리가 크든, 작든 귀 기울이고 소통하도록 노력합니다.
입사 초기 폭언을 하는 납세자에게 한 여직원분이 "나는 국세청 직원이기도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다. 욕설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모습에 울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즈막한 목소리가 더욱 큰 울림이 있음을 납세자분들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류성철, 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