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조세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수확보방안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4일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0회 조세관련학회 연합학술대회'에는 한국세법학회, 한국세무학회, 한국재정학회, 한국조세연구포럼, 한국국제조세협회 등 국내 세제관련 학회가 총출동해 '세수기반확보를 위한 합리적 조세제도 개편방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 앞서 행사 1부에서는 ▲복지수요 증대에 따른 법인세수 증대방안(조규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 ▲현행 간편장부제도의 문제점 및 합리적 제도 개선방향(박성욱 경희대학교 회계세무학과) ▲세법상 가상화폐(Virtual Currency)의 취급과 조세회피문제(정승영 한국지방세연구원 부연구위원) 를 주제로 한 발표가 진행됐다.
2부에서는 ▲장기재정전망과 조세정책 방향(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방자치 20년의 성과와 과제(이영환 계명대학교 세무학과 교수)가 발표됐다.
주제발표 뒤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한명진 기획재정부 세제실 조세정책관,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 김갑순 동국대 교수, 박희우 가톨릭대 교수,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 김태일 고려대 교수,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 박윤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전 국세청 차장),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조세자문부문장 등 정부와 학계 및 세무관련업계 전문가들 다수가 패널로 참여해 세수확보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교수는 복지재원마련을 위한 법인세수 증대방안에 대해 "복지지출 증가로 인해 추가세수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했다. 법인세율을 30%대에서 20%대로 인하했다. 세수확보를 위해 소비세를 인상하고 법인세를 인하, 즉 직접세보다는 간접세를 인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간편장부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박성욱 교수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정 교수는 "간편장부제도는 탈세의 근본원인이다. 전문가들은 간편장부제도만 폐지해도 세수가 상당부분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있다"며 "간편장부는 사후관리가 거의 안되며 가공경비를 과다계상해 탈세의 온상이 되고 있다.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김갑순 동국대 교수는 세수확보를 위해서는 현실을 반영하는 통계수치의 산출과 활용,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한 적극적인 과세정보 공개와 자신 성실 신고·납부를 위한 인센티브를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거와 정책 입안 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한 정확한 통계가 뒷받침 될 때 유권자나 담당공무원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세지출 관련 비과세·감면에 대한 평가와 조정 또한 올바른 통계와 추정이 가능할 때 경제적 실효성이 있는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세당국이 소득원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소득신고를 기피하거나 미룰 납세자는 없을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과세당국은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을 이용해 파악한 과세정보를 납세자에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는 복지수요 증대에 대한 재원조달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성실신고확인제도 등 현재의 방식이 중소기업(자영업자) 및 중소법인의 탈루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어서 대기업과 형평을 맞추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복지재정 수준에 대해 오늘 발제자 중에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고 과다하다는 사람도 있다"며 "하지만 전문가라면 우리나라 복지재정이 부족하다는 것 자체에는 동의해야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 OECD 복지지출 평균은 21.8%인데 한국은 10.2%로 절반에도 못미친다"며 "우리보다 작은 나라는 멕시코밖에 없다. 전문가라면 다 아는 얘기인데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국회 세법심의 과정이 졸속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은 대안의 탐색, 비교,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재정의 근간인 조세법 논의에서 이러한 논의가 실종돼고 있다"며 "국회에 법인세 인상에 대한 여러 법률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조세소위 속기록에는 이에 대한 제대로된 논의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법 개정에 따른 국회의장의 예산부수법안 직권상정에 대해서도 "국민의 재산권 보장과 직결된 조세법률 제·개정 논의는 다른 법률안보다 깊이 있는 검토와 토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예산안부수법안이라는 이유로 논의가 제약되는 모순되는 상황에 직면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중인 박윤준 국세청 전 차장은 개인과 중소기업은 세정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고문은 "우리나라는 개인소득으로 파악되는 부분이 OECD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개인과 중소법인이 세정에서 사각지대에 있고, 법인조사도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소법인은 세정에서 '성역화' 되어있다"고 말했다.
또한 증세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부가세를 올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며 법인세를 올려야한다고 얘기한다"며 "정치적으로 안되는 일이니 주장도 하지 말자며 금기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조세자문부문장은 우리나라 세법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통화로도 금융자산으로도 분류되지 않아 과세가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조세자문부문장은 "비트코인이 가상화폐로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현행 세법규정에 따르면 일종의 무형자산으로만 분류가 가능해 통화로 취급될 수 없다"며 "현행 금융관련 법제 관점에서 봐도 비트코인을 금융자산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거래로 발생한 소득을 과세대상 소득으로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과세표준 산출방식 및 적용세율에 대해서도 별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패널들의 의견을 모두 들은 한명진 조세정책관은 세수확보를 위한 법인세 인상 주장에 대해서는 "어려운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법인세는 국제적인 경쟁조세다. 언제든지 기업들이 공장을 옮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복지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출 구조조정을 하고 세입확충은 비과세감면을 통해서 하겠다"며 "부가세 세율인상 얘기도 있었는데 직접적인 증세는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어렵다"고 못박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