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무학대사 비밀문서 전해져 내려와
조선 개국공신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정도전은 무학대사만 누른 게 아니다.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계의 수장인 하륜(河崙)은 조선의 궁궐터로 서대문 밖의 무악벌을 주장했다. 오늘날의 서교동, 연희동, 동교동 일대다. 최규하(서교동), 전두환(연희동), 노태우(연희동), 김대중(동교동) 등 대통령 넷을 배출할 만큼 땅기운이 강력한 지역이다.
무학대사는“인왕산이 주산이 되면 좌청룡 북악산, 우백호 남산을 거느린 궁궐(경복궁)은 자연스레 동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관악산이 내뿜는 불기운도 막아냈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훗날 흥선 대원군이 광화문에 해태상이라는 방화막을 세웠을 만큼 관악산의 화기(火氣)는 드세다.
북한산의 세력권인 북악산 앞마당의 경복궁과 청와대 터는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다. 1398년 태조 7년 방원은 경복궁에서 정도전을 참살했다. “정도전이 태조(太祖)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속여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뒤 살해하려 했다”는 핑계였다. 이어 세자 방석(芳碩)을 귀양 중 죽이고 방번(芳蕃)마저 없앤 뒤에야 이방원은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연산군(燕山君) 때 경복궁은 유흥과 탐욕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뒤 방치돼 있다가 고종(高宗) 즉위 후 대원군의 주도로 대대적인 중건 공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국고가 바닥나고 숱한 인명이 희생되니 원성이 높아졌고 결국 대원군 퇴진의 주요 사유가 되었다.
청와대는 경복궁 내전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의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19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조선총독 관저를 세웠다. 6년 뒤 일본 총리대신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할 때까지는 청와대 터의 저주를 알지 못했다. 일본의 젊은 장교들이 사이토를 살해한 ‘2·26 사건’이 터진 것은 사이토가 청와대 터에 관저를 올린 지 꼭 10년째 되는 해였다. 이후 조선총독들의 최후는 예외 없이 비참했다.
반대로 청와대를 버린 이들은 모두 자기 명대로 살았다. 이승만, 윤보선,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들이 그 보기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나마 천수를 다한 것의 배후에는 북한산의 보살핌이 있었다. 모친이 북한산 문수암(현 문수사)에서 100일 기도 끝에 잉태한 귀한 자손이 그였던 만큼 북한산이 끝까지 ‘뒤’를 봐준 것이다. 대통령 시절 그가 문수암을 수차례 찾아 예를 갖춘 점도 북한산의 배려를 끌어내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면서 신비체험을 못했다면 계룡산이나 지리산, 태백산으로 발길을 돌려봄 직하다. 북한산은 개인의 기복(祈福) 신앙처로 적합지 않다. 북한산에 있는 한 사찰은 무학대사의 X파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무학이 직접 작성한 이 비밀문서는 북한산 승려에서 승려로 이어져 내려왔다. 한양이 서울로 바뀌고, 서울이 격동하는 순간순간을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꼭꼭 숨어있는 비결이다. 조선 왕사(王師) 무학은 그 비결 안에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몹시 궁금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