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이 가입접수 꺼려" vs "독려했지만 기업들이 미가입"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개성공단 자산 동결로 입주기업들이 원부자재와 완제품 대부분을 잃게 됐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든 교역보험의 가입실적이 없어 그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입주기업들은 원부자재 손실이나 원청업체와의 계약 불이행에 대비한 보험이 있는데도 수출입은행(수은)이 사실상 가입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수은은 반대로 여러 차례 가입을 독려했지만 기업들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가입을 꺼렸다고 맞서고 있다.
14일 수은과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에 따르면 현재 수은이 취급하는 보험 가운데 '개성공업지구 교역보험'에는 가입한 업체가 1곳도 없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은 크게 남북경협보험과 교역보험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경협보험은 북한에 투자한 지분이나 대출받은 시설·운영자금 등을 보장한다.
교역보험으로는 공단 가동이 2주일 이상 중단될 경우 개성으로 보낸 자재비를 70%까지 보상해주는 원부자재 반출보험과 원청업체 납품 계약금액의 10%를 보장해주는 납품이행 보장보험이 있다.
문제는 이런 교역보험에 가입한 업체가 전혀 없다 보니 개성공단에 남겨둔 원자재 손실은 물론 원청업체와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당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보험의 실효성이 땅에 떨어진 원인을 두고 입주기업과 수은은 날 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부 입주업체는 수은이 보험 가입을 받을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의 한 의류업체 대표는 "교역보험(납품이행 보장보험)은 (원청업체와의) 계약 건별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럴 인력이 없다는 게 수은의 답변이었다"며 "(없는 거래를 있는 것처럼 꾸미는) 기망행위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말도 들었는데 국책은행이 기업을 얼마나 범죄집단처럼 봤으면 이런 말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비해 수은은 보험 가입을 독려했지만 기업들이 가입을 꺼렸다고 주장했다.
수출입은행 남북보험팀 관계자는 "(납품이행 보장보험의 경우) 업체가 담당자를 두고 매 거래 건마다 관련 자료를 전산에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이런 부분이 번거롭기 때문에 기업들이 가입을 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험에 대한 설명이나 홍보에 대해서도 양측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입주업체 대표는 교역보험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고, 개성공단기업협회 역시 수은이 기업들의 가입을 독려하기 위한 협조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수은은 지금까지 1년에 수차례씩 업체에 안내문을 발송해 보험 가입을 독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은은 이 안내문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에는 '내부문서'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협보험에 대해서도 양측의 시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경협보험의 경우 개성공단 가동 중단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 현지에 들어간 설비투자비 등을 최대 90%까지 보장해주는 보험이다.
통일부와 수은의 2013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개성공단 입주기업 96곳, 협력업체 45곳 등이 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해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로 많은 업체들이 피해를 봤음에도 가입률은 늘지 않았다.
이달 5일 현재 입주업체 124곳 가운데 62.9%인 78곳(매점·주요소 등 영업소 포함하면 112곳)만 경협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입주업체 관계자는 "2013년 (가동중단 사태로) 기업들이 보험금을 받았다가 (가동 재개로) 반환하면서 '뱉어야 하는' 보험금이 무슨 보험금이냐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우리 회사는 지금 사정이 안 좋아져 보험료를 못 내고 있지만 냈다 한들 실효성이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수은 관계자는 "가동 중단 기간 영업손실까지 보상해달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자동차보험을 들어놓고 생명보험의 혜택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경협보험은 기본적으로 투자금에 대한 보험이고, 영업손실까지 보상해주는 보험이면 보험료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지금까지 경협보험과 교역보험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된 만큼 정부가 좀 더 실효성 있는 보험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역보험의 경우 가입실적이 전무하다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가 상황 파악과 제도 개선에 나섰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업체들이 2013년부터 교역보험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가입조건 등이 다소 까다로워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며 "보험료를 낮추거나 보장금액을 늘리는 등 요건을 완화하고 (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강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