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굼벵이' 조세심판결정…납세자는 괴롭다

조세심판원(원장 : 심화석)이 떠 안고 있는 가장 크고 근본적인, 모든 문제를 파생시키는 뿌리와 같은 문제는 다름 아닌 '인력난'이다.

조세심판원을 짓누르는 인력난은 사실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 아니다.

수 년 전부터,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납세자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매년 조세불복 건수가 늘어나고 그 내용 또한 복잡해지면서 동반자처럼 따라온 '고전(古典) '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시간이 갈 수록 인력난으로 인한 폐해만 늘어날 뿐 폐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인력확충)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인력난이 파생하는 문제의 핵심은 조세불복 사건 처리 지연으로 인해 납세자들이 유무형의 비용을 지출하는 등 '고통지수'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세심판원이 1건의 조세불복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려 납세자들에게 통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국세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정처리기한(90일)에 비해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납세자가 불복청구를 하더라도 원처분의 집행이 정지되지 않아 일단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심판결정이 지연될수록 납세자의 권익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사건은 많고 사람은 없다보니, 더군다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도 고치려고 하지 않으니 악순환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세심판원 인력 어떻길래…

조세심판원에 한 해 동안 접수되는 불복사건의 수는 1만건(이월사건 포함)이 넘는다. 조세심판원장을 비롯해 6명의 상임심판관, 조사관 등 총 112명의 직원이 불복사건에 매달려야 한다. 직급별로 차이는 나지만, 상임심판관 1명당 1000여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는 상황.   

실제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상임심판관 1인당 처리 건수는 1458건이었다.

2011년 1049건, 2012년 1074건, 2013년 1219건을 기록하는 등 매년 증가세가 뚜렷하다. 조사관 1명당 처리하는 사건 처리수도 2012년 496건에서 2013년 522건, 2014년 625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갈수록 느는데, 인력은 '제자리'다.

2008년 조세심판원이 확대재편될 당시 직원 수는 108명이었다. 이후 2010년까지 인력 충원이 없다가 2011년 심판원 직제개정에 따라 114명으로 늘었는데, 지난해 재차 직제개정을 하면서 111명으로 줄었다.

정원이 아닌 현원기준으로 했을 때 107명(지난해)으로, 심판원 설립 이후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인력난은 조세심판원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국세기본법에 조세심판청구 처리기간이 '90일'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 조세심판 처리기간은 90일을 넘기면서 납세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법 위반'하는 정부기관, 조세심판원 

불복청구 사건을 처리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최근 줄어들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법정처리기한을 지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불복청구 사건의 평균 처리기간(국세·지방세 포함)은 2011년 181일에서 2012년 167일, 2013년 150일로 하락세를 보이다가, 2014년 185건으로 급등했다. 심판원 자체적으로 강력한 처리기간 단축 노력을 기울인 지난해에는 10일이나 줄인 175일을 기록했다.

핵심은 처리기간을 줄이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현재만으로도 조세심판원은 대놓고 법을 위반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다. 특정 몇 몇 사건의 경우 '연(年)단위'를 넘겨 처리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납세자가 국세청 등 과세관청과 세금을 놓고 벌인 조세불복에서 승소(인용)하기 전까지는 납부했던 세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세금을 납부한 후 조세불복을 진행하는 경우), 사건처리가 지연될수록 납세협력비용 등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조세심판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납세자의 성토성 글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법정처리기한을 지켜달라'는 제목으로 달린 글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심판청구를 접수했는데, 청구 과다로 인해 (사건처리가)지연되는 것 같다. 청구인은 불복절차로 체납된 세금 또는 이미 납부한 세금으로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쓰여 있다.

불복청구 후 하염없이 속만 태우는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법정처리기간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낄 법 한 대목이다. 지키지 못할 바에는 법정처리기간을 폐지하던가, 법정처리기간을 지킬 수 있도록 심판원의 인력 체계 등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납세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심판원에 적정한 인원을 충원시켜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전문가는 "조세불복을 하더라도 원처분의 집행이 정지되지 않아 일단 세금을 내야 하므로 심판결정이 지연될수록 납세자의 권익은 침해된다"며 "이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인력 충원 등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조세전문가는 "그동안 조세심판원 인력 문제가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정부가 이에 대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고 있지 않다. 납세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지 않는 것은 납세자 권익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말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자리'를 늘려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된다. 조세심판원의 설립취지가 납세자 권익보호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심판원 인력충원 문제에 대한 발전적인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불복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1인당 맡은 업무량이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4배 이상 많다"면서 "국세청, 감사원 등 유관기관과 비교해서도 심판원의 업무가 더 가중되어 있다. 이 같이 업무는 늘어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면 부실결정이 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