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선(왼쪽)이 놓친 작품을 잡아 연타석 홈런을 터트린 송혜교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로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작품을 통해 연기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배우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연예계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고사해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배우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덥석 붙잡아 성공하는 케이스가 종종 발생한다.
2002년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리며 이슈가 됐던 드라마 '로망스'의 주인공은 원래 김하늘이 아닌 김남주였다. 하지만 김남주가 출연을 고사하면서 배역은 김하늘에게 넘어갔고 김하늘은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으로 각광받는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뚱뚱한 여성이 전신성형을 통해 미인이 된다는 내용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많은 배우들로부터 퇴짜를 맞은 작품이다. 고소영, 김희선, 이나영, 수애 등의 톱스타들이 특수분장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며 출연을 고사했고 제작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당시 신인이었던 김아중을 선택했다. 결과는 정반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 김아중의 비만녀 연기는 600만 관객 동원으로 이어졌다.
배우 김희선은 자신이 출연을 거절한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이상한 징크스를 갖고 있다.
김희선과 드라마 '프로포즈', '웨딩드레스'를 함께 했던 윤석호 PD는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 역할을 김희선에게 제안했지만 영화 '비천무' 촬영 때문에 거절당했다. 이 역할을 꿰찬 송혜교는 40%가 넘는 시청률로 이른바 '가을동화 신드롬' 까지 일으키며 2000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김희선의 아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40%대 시청률의 드라마 '수호천사', 50%대의 '올인' 역시 다른 스케줄 때문에 포기했는데 공교롭게도 송혜교가 모두 이어받아 연타석 홈런을 쳤다.
남자 스타들의 캐스팅 잔혹사도 여성 못지 않다.
5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각종 유행어를 쏟아낸 드라마 '파리의 연인' 주인공은 박신양이 아닌 이서진이었다. 김은숙, 박은정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기주 역으로 물망에 올랐던 이서진이 드라마 '불새' 촬영 때문에 곤란하다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우진 역의 초반 캐스팅은 한석규였다. 과거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최민식은 "'올드보이'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한석규가 떠올랐다. 그 역할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고사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때가 아마 한석규의 슬럼프가 아닌가 싶다. 굉장히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임시완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 큰 공감을 일으킨 드라마 '미생' 출연 이후 10여편의 광고에서 15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이 같은 성공에 누구보다 속이 쓰린 이는 이제훈. 그는 임시완보다 먼저 '미생' 장그래 역을 제의 받았으나 시청률 5.2%에 그친 드라마 '비밀의 문'을 선택하고 말았다.
지성 역시 다른 배우들의 출연 고사 덕분에 데뷔 16년 만에 드라마 '킬미힐미'로 연기대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먼저 캐스팅된 현빈은 제작사와의 마찰로, 두 번째 후보였던 이승기는 영화 스케줄과 겹쳐 '킬미힐미' 출연이 무산됐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던 제작진은 방송 한 달 전 극적으로 지성, 황정음을 만나 성공가도를 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