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견됐던 한-EU 간 법률시장 전면 개방이 아직까지 큰 파고가 없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찻잔 속 태풍'에 머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지난 7월1일 최종 단계인 3단계 법률시장 개방에 들어간 상황인 가운데 6일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더라도 주요 대형 로펌들에게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는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변화는 대형 로펌보다는 중·소형 로펌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하지 않겠느냐"며 "현재의 상황 변화를 바라는 중·소형 로펌들이 외국 로펌과의 합작법무법인 설립을 통해 변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지난 2단계 개방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구체적인 업무 제휴 사례를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며 "최종 단계인 3단계 개방에서도 미리 준비된 합작 발표가 없는 것을 보면 실제 법률시장 개방으로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영역이 구체화되지 않은 것 같다"며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소형 로펌의 한 변호사 역시 "법률시장 개방에 대해 주변에서 얘기가 조금 있어왔지만, 대부분 추상적인 전망을 내놓는 수준이고, 구체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 이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 역시 "대형 로펌과 소형 로펌보다는 중형 로펌들 중에서 외국 로펌과의 합작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한편 대한변협은 지난 1일 법률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성명을 통해 "법률시장 전면개방에 따라 국내 법률시장의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으나, 국내 로펌들이 이미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을 통해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평가했다.
변협은 "외국법자문사를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국내 변호사(로펌)의 경쟁력 강화 및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며 "우리 법률 시장의 보호와 성장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각 로펌들의 원활한 협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EU 간 법률시장 개방은 3단계로 진행돼왔다.
1단계는 지난 2011년 7월 1일 통과된 FTA가 발효된 날부터 시작됐으며,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한 외국변호사가 국내에서 외국법과 국제공법에 대한 자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외국 로펌이 외국법자문사로 구성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를 국내에 설립하도록 허용했다.
2단계는 FTA 발효 2년 후인 2013년 7월 1일부터 진행됐으며,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와 국내 로펌의 업무제휴, 협업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국내법과 외국법 사무가 섞여있는 사건에 한해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공동 수임이 허용됐다.
최종 단계인 3단계 개방은 FTA 발효 5년 이내에 이뤄지도록 돼있었으며, 이에 따라 지난 7월 1일 발효됐다.
3단계에서는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이 합작법무법인을 만들 수 있으며, 합작법인은 국내 변호사를 채용해 국내법 자문 업무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법률시장 개방은 한-미 FTA에도 똑같이 규정돼 있으며, 한-미 간 법률시장 개방 1단계는 2012년 3월15일, 2단계는 2014년 3월15일 발효됐고, 마지막 최종 단계인 3단계는 2017년 3월15일에 발효될 예정이다.
한편 국회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올해 2월 몇 가지 제한 조치를 담은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의 시행일은 EU에게 3단계 법률시장이 개방된 7월1일부터다.
주요 내용은 합작법인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합작 주체를 국내 로펌과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의 본사로 한정하고, 지사격인 외국로펌의 한국사무소가 독자적으로 합작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외국 로펌이 국내 로펌을 잠식할 수 없도록 외국 로펌의 합작법인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고, 지분율도 최대 49%로 제한했다.
이러한 제한적인 조치에 대해 2014년 8월 설립한 영국의 로펌 '스티븐슨 하우드 서울사무소'의 한국 대표인 김경화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외국 로펌에게 지분을 최대 49%까지만 갖도록 한 반면 책임은 무한대로 진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영국계 로펌들은 합작할 계획이 없는 걸로 알고 있고, 들은 바도 없다"며 3단계 개방이 한국 법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 놓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규모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외국 로펌이 거대 자본과 물량 공세에 나선다면 국내 주요 로펌들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소송에 대해서는 외국 로펌들이 노하우나 데이터 등이 축적된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 로펌들이 이 부분에 경쟁력이 있을지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에 따라 외국 로펌이 들어오더라도 국내 시장에서 확장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할텐데, 아직까지는 국내 법률시장에서의 수익이나 성과에 대해 구체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합작법인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