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 청와대)
검찰 수사-특검 수용한다했지만...'권력의지'는 꺾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5일 '90초 녹화 사과'에 이어 두 번째로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담화문 곳곳에 여전한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등 국정 통제 불능 사태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고,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모금을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하야(下野) 주장이 거세지는 등 코너에 몰리자, 다시 한 번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안보위기-국정공백 강조하며 '권력의지' 표출 = 하지만 하야 민심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권력 이양', 적어도 '2선 후퇴'에 대한 입장마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를 의미하는 발언과 중간 중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감정에만 호소한 것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안보 위기와 국정공백을 거론하며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만 한다"며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각계 원로, 종교지도자, 여야 대표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오히려 국정권한을 내주기보다 국정주도권을 끝까지 쥐고 가겠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책임총리' 권한에 대해서도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 靑 "책임총리 권한" 말하지만 대통령은 공식 언급 無 =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담화는 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넘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 후보자가 책임 총리로서 갖는 권한이 어느 수준인지 애매해 가늠하기 힘들다.
특히 야권은 최순실 사태 수습에 따른 기습개각 자체를 부정하며 '철회'를 주장하고 있고 나아가 거국중립내각으로서 대통령의 권력이양과 국회 추천의 총리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권력이양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야권은 박 대통령의 '단계적 퇴진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한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이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에게 국정일선에서 물러나라고 건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대통령의 권력의지를 거듭 드러내 민심을 여전히 못 읽고 있다는 비판이다.
□ 野 권력이양 압박…역대 최저 지지율 5% "통치불능 상태" =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국정지지율 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최저치인 5%를 기록한 것이 대통령의 민심 '모르쇠'를 반증한다.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정례주간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전국의 성인남녀 1천5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 5%에 불과했다.
갤럽 조사 역사상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국정지지율 5%는 사실상 '0'이다. 국정 통치 불능 상황"이라며 "적어도 '2선 후퇴'라는 발언은 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권력의지를 드러내면 국민만 절규한다"고 지적했다.
□ 재단 모금 과정 '선의'-개인일탈 강조…檢 수사가이드라인 제시 논란 =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발언도 논란이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과정에 대해 거듭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 추진된 일이었다"고 '선의(善意)'를 강조,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지적이다.
그는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거듭 재단 설립 과정의 선의를 강조했다.
재단 모금 강제성에 대해서도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히면서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고 대통령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로 내세웠다.
검찰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뇌물죄 적용이 아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에 대해 더민주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뇌물죄 등 중요 범죄 혐의를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 특검 수용, 상설특검? 별도 특검? 애매 = 박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조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한 발언 역시 애매하다.
박 대통령이 밝힌 특검이 야당이 주장하는 별도 특별법에 의한 특검인지, 여당이 주장하는 상설특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야권 관계자는 "결국 대통령이 말하는 특검은 여당이 말하는 상설특검, 즉 자신이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특검을 말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단순히 수사를 받겠다고 할 게 아니라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데 논란만 만든다. 검찰수사도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를 믿자고 하면 끝날 일인가"라고 힐난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최씨와 관계에 대해 개인사를 내세우며 감정에만 호소한 것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흉탄에 부모를 잃은' 개인사에 기대어 동정론으로 지지를 받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자신의 이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 최씨와의 관계, 아픈 개인사 강조…감정에 호소 = 박 대통령은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해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며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 최순실씨로부터 도움 받고 왕래하게 되었다"고 개인사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던 게 사실"이라며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든다"며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감정에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며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자기는 '사람을 믿은 죄'밖에 없다는 거 아니냐. 피해자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며 "또 가족들과 연을 끊은 것은 청와대 들어오고 난 후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형제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TK(대구·경북)나 70대 어르신들에게 동정론을 유발하겠다는 의도"라며 "여전히 민심은 안중에 없다. 국민들이 '대국민 절교(絶交)선언', '대국민 담화가 아닌 담와'라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