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9일 가결된 후, 우리나라 경제가 '불확실성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됐을 때 '경제가 더 악화된다'는 전망이 붙으면서, 탄핵 정국으로 얼어붙은 소비나 투자 심리를 흔들어 깨울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이달 하순 내놓을 예정인 내년 경제정책방향이 사실상 '시한부 대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즉각 하야를 촉구하는 민심을 받아들여 1월 탄핵을 인용할 경우 '벚꽃 대선'이 치러지고, 늦어도 '장마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6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경제팀 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적극적으로 경제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처지 또한 '시한부'나 다름없는 유 부총리의 입김이 담긴 정책이 경제주체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유폐된 박근혜 대통령이 뽑아 올린 임종룡 경제부총리 카드를 버리고 유 부총리의 유임을 지난 12일 결정했지만 이미 김이 다 새어버린 경제팀이 중심축을 제대로 잡고 경제정책을 이끌어 가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일호'에 의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기재부는 매년 12월 이듬해의 경제정책방향의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 해 6월 이를 보완 수정하는 방식으로 경제정책방향을 작성해 발표하고 집행기관들을 독려해 경제정책을 이끌어 왔다.
기재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경제정책방향 발표 시점은 12월 마지막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성장률 전망 등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나, 400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통해 확장적인 재정정책 기조의 유지라는 큰 틀은 유지된다.
하지만 조직 내부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일단 급한 불은 끈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뽑아 올린 '임종룡 카드'는 사장되어가는 분위기를 탄 형국.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유 부총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경제여론을 어떻게 경제정책방향에 담을지 고민하겠다"고 밝히면서 내년 경제정책 수립에 있어 자신이 직접 결단력과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메시지를 경제주체들에게 전한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도 '힘'을 보탰다.
현 경제팀의 교체가 이루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서다. 황 권한대행은 "경제 분야는 그간 호흡을 맞춰왔던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중심의 현재의 경제팀이 책임감을 갖고 대내외 리스크와 경제 현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달라"며 유 부총리의 유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풀이다.
문제는 정국 주도권을 꽉 쥐게 된 야권의 동향이다. 분당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새누리당은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 압도적인 탄핵 찬성표까지 등에 엎은 야권이 경제사령탑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려고 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당이 경제부총리 문제를 더불어민주당에 '백지위임'하면서 민주당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유 부총리와 임 내정자의 거취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공을 지도부로 넘겼다.
의총에서는 '임종룡 불가론'의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기 대선과 별개로 어수선한 내년 한 해 경제를 이끌 확실한 중심축이 필요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임종룡 또는 그 아닌 다른 대안 마련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현재의 유일호 체제도 위태위태한 상황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불확실성 지뢰밭, 경제주체들 움직여줄까
기재부 관료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어디까지 관료로서 할 수 있는, 원론적 입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정치·정책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기재부 안팎으론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민감도가 높거나 고도의 추진력이 필요한 굵직한 정책들이 담기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일관된 경제정책 기조인 구조개혁과 경제활력 제고 등 기본 틀을 유지하겠다는 수준의 선언적 정책들만이 담기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국에 솔깃한 정책을 내놓는다 해도 경제주체들은 내년 3~4월 혹은 6월 이후를 염두에 두고 움직일 공산이 크다. 최대 11개월 앞서 출범할 다음 정부의, 달라진 경제정책 기조를 지켜보겠다는 심리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제활성화를 앞에서 이끌어야 할 경제주체들의 경제심리 위축은 불가피하며 내년 또 다시 저성장 국면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기관도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4%로 내렸다. KDI는 "정치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주체의 소비위축과 투자지연 뿐만 아니라 생산 및 노동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파급되면서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제시했다. 현대경제연구원(2.6%), 한국금융연구원(2.5%), LG경제연구원(2.2%), 한국경제연구원(2.2%) 등 민간연구기관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는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수치들이며 정치 불확실성에 안팎으로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내년도 성장률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