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7년 제정된 '납세자의 날' 이 올해로 39회째를 맞았다. 국민의 납세정신 계몽, 세수증대라는 다소 진부하고 딱딱한 제정취지는 제쳐두고라도 납세자의 날은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모든 국민을 위하는 날이다.
좀 더 나아가 국민을 위한 날인 동시에 국민의, 국민에 의해 바로 세워져야 할 날인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치러지는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항상 국민은 뒷전인 듯한 인상이 짙다. 올해로 39돌을 맞은 납세자의 날도 이 같은 현상은 여전하다.
재정경제부, 국세청 등 '세금유관기관' 의 주관으로 한 시간여 동안 그럴싸한 장소에서 정부가 선정하는 세금 많이 낸 기업, 국민이 세금 많이 내도록 일 잘한 공무원들과 사진 찍고 상패 돌리는 선에서 납세자의 날 '기념' 행사는 마무리된다. 이 자리 어디에고 일반 봉급생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일선세무서에서는 유명 연예인이나 관내 납세자(사업자, 전문가)들을 불러다 놓고 몇시간 세무서 근무를 시키는 것이 '납세자가 주인인 날' 이라는 납세자의 날에 벌어지는 통념화 된 풍경이다.
또한 납세자들의 손에 의해 세워진 '대통령' 도 행사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관례화 된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초 한 납세자 단체는 "세금을 받아 집행하는 대통령으로서 납세자의 날에 국민 앞에 서지 않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며 납세자의 날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역대 대통령들은 세금을 쓰는 데에는 열의에 차있지만, 세금을 내는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을 해 세금을 내는 지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 이라고까지 몰아부치며 강력히 촉구했지만 달라진게 없다.
굳이 납세자의 날을 국경일로 삼아 달력에 '빨간 날' 하나 늘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납세자가 주인인 납세자의 날' 의 진정한 주인공이 납세자 자신들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굳이 납세자의 날이 아니고서라도 세금을 성실하게 잘 내는 사람들이 진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납세문화'를 조성하는데 정부가 팔 걷고 나서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지방세와 국세를 합쳐 연간 155조원 가까이 세부담을 지고 있다. 국민 한 사람당 1년에 320만원 가까이 세금을 내고 있는 셈. 이런 막대한 돈을 '군말 없이' 내 주는 납세자들에게 어떤 대접을 해야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년 365일이 어렵다면 1년에 단 하루 뿐인 납세자의 날 만이라도 진정한 의미의 납세자를 위한 날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행사장에서 사진 찍고 상패 돌리고, 연예인 초청하는 선에서 끝내는 작금의 납세자의 날 풍경은 '내용 없는 연극' 이나 다름 없다.
정부가 외쳐대는 '감동세정' 의 의미는 분명 납세자를 위하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뜻일 게다.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부공무원들이 나와 납세자 앞에 큰 절을 올려도 모자랄 이런 날에 더 이상 '보여주기' 식 행사만을 꾀하는 것은 납세자들, 즉 국민들을 절대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