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가 지난 4월 30일 대구 동성로를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사진 바른정당)
바른정당 탈당파들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지난 1월 24일 창당해 3일인 이날부로 100일째를 맞았지만 13명의 탈당으로 당은 전력을 잃었다.
13명 의원들은 전날(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수단일화를 통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친북좌파 패권 세력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탈당의 변을 내세웠다.
이날 탈당 의사를 밝힌 의원들은 김재경, 박순자, 이군현, 권성동, 김성태, 김학용, 박성중, 여상규, 이진복, 장제원,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 의원이다. 이중 옛 새누리당 내에서 소장파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전면에서 비판했던 황영철 의원은 거센 비난 여론에 3일 탈당을 보류한 상태다. 앞서 혼자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건너간 이은재 의원까지 하면 총 13명이라는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거듭 '보수 정권재창출', '친북좌파 집권 막기'를 절대적 사명인양 탈당의 이유로 대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명분도 실리도 잃는 '보수의 천박함'만 드러낸 꼴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의 탈당으로 창당 당시 내세운 '새로운 보수의 재건'이란 명분이 무색해졌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국민적 비난이 거세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탈당을 촉구했던 이들이 바로 바른정당을 창당한 비박계 의원들이다.
□ 탄핵 주도 비박계 "새로운 보수의 재건" 내걸고 바른정당 '창당' = 지난 해 12월 2일 6차 대규모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사상최대인 232만이 거리로 쏟아지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여론이 최고조에 이르자, 이들은 일주일 후인 12월 9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과 함께 탄핵안 가결에 동참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은 재석 299명 중 234명이 찬성, 56명 반대, 무효 7명, 기권 2명의 결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과 무소속(더불어민주당 121·국민의당 38·정의당 6·무소속 7) 172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보면 당시 새누리당에서 62명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특히 당시 비박계 의원들은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를 만들어 연일 회의를 통해 박 전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들 중 33명의 의원들은 탄핵 직후에도 새누리당 내 친박 강경파에 대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며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새로운 보수의 재건'이라는 담론적 명분과 국정농단 책임이 있는 친박 해체라는 정치적 명분 등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탈당했던 이유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다시 옛 새누리당인 자유한국당에 들어가는 모습은 결국 내세운 명분이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보인 꼴이다.
◆…바른정당 13명 의원은 2일 탈당선언을 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왼쪽부터 박순자, 이군현, 홍문표(뒤), 김성태(앞), 김재경, 황영철, 권성동 의원..(사진 YTN 캡쳐)
□ 지지율 바닥, 지역조직 와해 위기 '현실적 고민' = 특히 이들의 탈당이유에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등 지역조직의 현실적 고민도 지적되고 있다. 지역구 의원은 바른정당이어도 지방조직은 여전히 새누리당 조직이다. 이 조직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으로선 승산이 없다고 판단, 지역구 의원들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대선 일주일을 앞둔 상황에서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유승민 후보만 믿고 가기엔 내년 지방선거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장제원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 "대선에 참패할 경우 결정적으로 지방조직이 와해되고 차기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공천을 할 수 없게 되면 바른정당 존립 자체가 문제 된다"며 "그래서 유 후보께 우리에게 책임 있는 말씀을 해주셔야 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현실적 문제를 지적했다.
지방조직이 와해되면 국회의원들 역시 차기 총선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다음 총선이 3년 남았다 해도 지역을 관리하고 챙기는 것은 지역조직이기 때문에 의원들로서는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자신의 보좌관에게도 미처 알리지 못하고 탈당선언을 한 의원들도 있다.
탈당파 한 의원 관계자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탈당 선언한지도 몰랐다. 현재 캠프(유 후보)에 있는데 방(의원실)에서 '복귀하라'고 연락이 와서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개혁보수의 재건'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탈당을 해놓고 자신들의 실리에 따라 창당 100일도 안되어서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것은 합리화가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바른정당 한 관계자는 "부끄럽다. 창당 100일도 안 된 상태에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도로 들어가는 건 정말 국민보기 부끄러운 일"이라며 "후보 지지율이 낮아도 당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뽑은 대선후보인데, 이런 식으로 흔드는 건 정치 도의에 맞지 않고 장기적으로도 득 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
관계자의 지적대로 여전히 자유한국당 내 친박계는 건재하다. 자유한국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이 탈당파 의원들의 복당으로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박 의원들은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친박 '맏형'인 서청원 의원은 "벼룩에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으로 일갈했고, 김태흠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권선동, 장제원, 황영철 의원 등 3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의 입당을 거부했다.
□ "보수 수치의 날" "한국보수의 한계" = 특히 과거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냈던 전여옥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로 자유한국으로 돌아갔다. 탈당을 할 때 그 '결기'는 '헛 폼'이었다는 이야기"라며 "이유는 많지만 이러다가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두려움"이라고 힐난했다.
전 작가는 "이미 진 선거라고 저렇게 우루루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니 한 때 보수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희생을 모르는 보수, 인내할 줄 모르는 보수, 손해볼 줄 모르는 보수, 고생할 줄 모르는 보수, 누가 어느 유권자가 표를 주겠나? 오늘 보수의 민낯이, 보수의 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보수 수치일'이다"라고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서강대 이현우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바른정당 탈당사태에 대해 "한국보수의 한계이고 천박함"라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유 후보에게 '단일화 요구'를 했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탈당 명분으로 말하는데, 애초에 새누리당에서 나올 때 명분이 친박 해체, 보수의 재건인데 이게 이뤄졌나. 지금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또 다른 명분을 내세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안감이 엄습해 오니 대선 일주일 앞두고 탈당하는 건데, 이는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단견에 지나지 않다"며 "힘들어도 정당은 정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고 심판 받으면서 커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 게시판에는 현재 유승민 후보의 응원글이 쏟아지고 있다.
□ '굳세어라!! 유승민' 높아지는 '동정여론' 응원 봇물 = 보수-진보 진영을 떠나 '정치적 도의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대선 완주'의지를 다지는 유 후보에 대한 동정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날 저녁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마지막 남은 2분여 시간동안 그는 탈당사태에 대한 심경을 담담히 밝혀 SNS와 각종 포털 게시판에 응원하는 글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탈당사태를 빚으며 전날 하루만 후원자가 일평균 50여건에서 15배가 넘는 750명에 이르렀고, 후원금 역시 일평균 500만원의 13배가 넘는 65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후보는 전날 토론회 남은 시간 2분을 활용해 "참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전 실망 안 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새누리당에 남아 개혁하고 싶었지만 보수가 해온 방식으로는 보수 소멸된다 생각했다"며 “정말 깨끗하고 따듯한 정의로운 보수 해보고 싶다. 저런 보수가 있구나, 저런 보수라면 지지할 수 있겠다. 그런 보수정치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 후보는 "지금의 자유한국당 이번 선거 어떻게 될지 모르나 낡은 보수, 썩은 보수, 부패 보수로는 보수가 궤멸되고 소멸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이순신 장군의 '신(臣)에겐 열 두 척의 배가 남았다'는 말을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이 손잡아주시면 제가 개혁보수의 길을 가보고 싶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