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고시 33회 출신 한승희 현 서울지방국세청장(이하 한 후보자)이 제22대 국세청장 후보자로 전격 지명되면서 국세청은 거대한 '인적쇄신'의 파도 위에 올라타게 됐다.
국세청장 후보자 한승희, 왜 '파격 선택'인가
연령 측면에서 보면 한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다.
한 후보자는 1961년 출생자로 현 임환수 국세청장(1962년 출생)보다 1살이 많다.
한국나이로 57세.
'세대교체'라고 하기 애매한 연령이다.
하지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한 후보자의 행정고시 기수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한 후보자는 행시 33회 출신으로 행시 28회 출신 임 국세청장에 비해 무려 5기수 아래다.
만약 임 국세청장과 한 후보자 사이에 행시 29~32회 출신들이 여럿 존재했다면 '숙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무더기 퇴직' 현상이 나타났을 수 있다.
다행히 현재 국세청 내부에 한 후보자의 행시 선배기수는 국세청 관례에 따라 6월말 명예퇴직 예정인 심달훈 현 중부지방국세청장(행시 31회)과 지난해 말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이어 1급 지방국세청장 자리에 올라선 서진욱 현 부산지방국세청장(행시 31회) 2명 뿐이다.
공직사회, 특히 행정고시 출신들이 즐비한 중앙부처 인사에서 5기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한 후보자를 지명한 문재인 대통령 선택은 이런 측면에서 분명 '파격적인 세대교체'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국세청은 급진적인 세대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내부승진' 내준 文의 노림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 후보자를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에는 국세청의 '인적쇄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세청 1급 고위직(고위공무원 가급)은 총 4명인데(국세청 차장, 서울·중부·부산국세청장) 한 후보자의 지명으로 사실상 4명 전원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봉래 현 국세청 차장과 심달훈 현 중부국세청장은 국세청의 오랜 인사관행인 서기관급 이상 2년 조기명예퇴직제 대상이 되면서 오는 6월말 명예퇴직이 불가피하다.
서진욱 현 부산국세청장의 거취가 관건인데, 연령(1964년 출생)으로 볼 때는 더 근무가 가능하지만 인적쇄신 분위기와 함께 한 후보자의 선배기수라는 점 등 여러 주변상황을 고려할 때 교체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국세청 안팎의 분석.
1급 고위직의 교체는 2급 지방국세청장(대전·광주·대구) 및 본청과 서울청·중부청·부산청 국장 등 국세청 고위공무원 라인업 전반의 '지각변동'을 동반하게 된다.
특히 이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 국세청의 인재풀 구성상 급진적인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한 후보자의 바로 아래 기수인 행시 34회는 2명(서대원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신동렬 대전지방국세청장)에 불과하고 행시 35회는 3명(김현준 국세청 기획조정관, 양병수 국세청 자산과세국장, 이은항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뿐이다.
그나마 신 대전국세청장의 경우 1959년 하반기 출생자로 연말 명예퇴직 대상이다.
당장 1급 선상에 올릴만한 비고시 자원도 극히 드문데다(김한년 서울청 조사1국장, 김형환 서울청 성실납세지원국장) 이중 일부는 앞으로를 생각해 남겨둬야 할 인물도 있다.
특히 행시 35회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아(김현준-1968년, 양병수-1965년, 이은항-1966년) 당장 1급 자원으로 써먹기가 애매한 측면이 많다. 수를 잘못 두었다가는 자칫 젊은 인재들이 조기에 누수되어버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세청 고위공무원단 개편의 '중심축'은 행시 36회 출신들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행시 36회 출신 중 연령 기준으로 보면 김희철 광주지방국세청장(1960년 출생), 임경구 국세청 조사국장(1961년 출생) 등 갈 길 바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행시 35회들에 앞서 중용될 가능성이 크다.
본청 국장급 라인업도 현재 지방국세청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나머지 행시36회 출신(유재철 서울청 조사4국장, 김대지 중부청 조사2국장, 이동신 중부청 조사4국장 등)들과 함께 행시37회~38회 출신들이 진출하는 수순을 밟게 되고, 서울청과 중부청, 부산청 국장급 라인업도 신진급들로 물갈이 될 것으로 보인다.
40대 중후반 연령의 젊은 주자들이 일거에 국세청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청와대가 한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을 주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의 인재풀 현황을 제대로 파악, '내부승진'이라는 국세청의 희망사항을 현실화시켜주는 동시에 외부출신 국세청장이 임명됐을 경우와 비견되는 수준의 인적쇄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멘텀으로 한 후보자를 지목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세무조사 강화? 기우(杞憂)일 수도...
일각에서는 한 후보자가 국세청장으로 정식 취임할 경우 대기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이 세무조사 등 행정력을 활용한 세수확보가 아닌 정책적인 변화(세법개정)를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한 후보자의 지명이 곧 세무조사 강화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세청이 지난 수 년 동안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세정의 고도화를 추진해 왔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세무조사 강도를 높이지 않아도 세수가 충분하게 확보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져 있다.
특히 집권 초기인데다 지난해와 올해 세수가 예상치보다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세무조사 강화는 내년 지방선거 등을 앞둔 상황에서 자칫 정권의 부담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