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회 선관위, '눈치'보다 '법과 원칙' 선택하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세무사회 전경.

한국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최원두)가 세무사회 역사에 오래 도록 남을 기념비적 결정을 내렸다. 지나친 흑색선전을 전개, 세무사회 선거관리규정을 다수 위반한 이창규 세무사에 대해 '당선무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선거가 이 세무사의 승리로 끝난 상황에서 뒤늦은 결정이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올 수 있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불공정에 대한 단죄를 내리면서, 향후 계속될 세무사회장 선거의 판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세무사회 선거관리위원회는 5일 오전 10시 선거관리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지난 3일 백운찬 전 세무사회장측이 제기한 이창규 세무사의 선거관리규정 위반 혐의가 적시된 이의신청을 심의한 후 이 세무사의 당선무효를 결정했다.

현행 세무사회 선거관리규정상 선거과정에서 허위사실 유포 또는 상대후보에 대한 과도한 비방 등으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 3회 이상을 받은 경우, 후보자격 박탈 및 사후적으로 당선무효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세무사회에 따르면 이 세무사는 지난 19일 서울세무사회 순회투표 과정에서 소견발표 중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도 않은 진위가 불분명한 내용을 유포, 경고 1회를 받은 상황이었다.

이후 이 세무사는 대전과 광주, 대구, 부산, 중부지방회 등 5개 지역세무사회 순회투표 과정에서도 사전 심의가 생략된, 백 전 세무사회장을 비방하는 내용을 소견발표를 통해 유포했지만 선관위는 이에 대해 선거관리규정 위반이라는 결정만 내렸을 뿐, 이를 주의 또는 경고 처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으로 이미 선거기간 중 이 세무사에 대해 '후보자격 박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2년전 제29대 세무사회장 선거 당시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일정이 모두 종료된 직후, 개표를 수 일 앞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선관위를 소집해 당시 회장 후보로 출마했던 조용근 세무사(전 한국세무사회장, 천안함재단이사장)의 후보자격 박탈을 결정한 바 있다.

◆…지난달 19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세무사회 임원선거 지방회 투표에서 후보들이 연설 도중 선을 넘는 발언을 해 선관위로부터 마이크 차단, 연설 중단 등의 조치를 당했다. 사진은 세무사회 선관위 경고 피켓.

백 전 회장측은 선거가 종료된 직후인 지난 3일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미 규정위반으로 확정한 부분에 대해 주의 또는 경고 처분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이 세무사측의 추가적인 선거관리규정 위반 혐의(7개)를 적시한 이의신청서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에 선관위는 이날 심의를 통해 7개 사안에 대해 주의 처분을 내리면서 이 세무사는 경고 3회(주의 3회→경고 1회) 누적으로 당선무효 결정까지 내리게 됐다는 전언이다(최종 경고 3회, 주의 13회).

당초 '새로운 회장의 눈치 때문에 유야무야 덮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던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법과 원칙을 위반한 불법선거를 용인해서는 향후 치러질 선거에서도 상대 후보를 짓밟는 죽고 살기식 선거전으로 점철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비정상적인 선거 문화가 더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세무사회원은 "이번 선거에서 이창규 세무사측이 선거관리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관리규정 자체가 가혹한 규제가 많아 도전자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도 있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규정에 따라 처분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악법도 법인데, 법을 지켜가며 선거를 치른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 아니겠느냐"라며 "회원들의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의사결정이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벗어난 것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는 제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사회원은 "선거관리위원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제한 뒤 "세무사들은 세법 집행의 조력자로서 법과 원칙이라는 틀에서 움직여야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자격사 단체다. 이번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국민들에게 세무사회가 법과 원칙에 따라 반듯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지만, 반칙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이 선거관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확정됐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이에 불응해 소송을 내는 등 돌발행동을 한다면 결국 세무사회의 대외적 이미지만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세무사회원은 "만약 백 전 세무사회장이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해 당선됐다면 이 또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할 일"이라며 "선거관리규정 위반 여부는 선거관리위원회보다 이를 위반한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며 "'당선되고 보자'식의 선거를 치른 이들을 용인한다면 향후 세무사회 선거에서 그 누가 선거관리규정을 지키겠는가. 이는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