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고 가감 없이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5년 조세정책 기조는 '증세'가 기본 베이스라는 사실을 정부 출범 후 첫 세법개정안을 통해 제대로 알렸다.
갈 길이 험난하지만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을 타게팅한 법인세율 및 소득세율 인상안 등 이번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연간 5조5000억원, 향후 5년 동안 24~25조원 수준의 세수증대가 예상된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
어차피 예측치에 불과해 세수효과를 논의하는데는 의미가 없지만 대부분의 세부담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들이 떠 안게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안이 이렇게 제시됐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이 두 부분은 결국 정치의 영역에서 최종 결정될 부분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세법과 예산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다, 정국 경색 해소 차원의 '빅딜'이라는 명분으로 서로 한 발씩 물러나 손을 잡는 장면을 무수히 반복해왔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0%이다.
따라서 정치적 협상 측면에서 본다면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상안은 '떡밥'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론이 온통 여기에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상안 뒤에 크고 작은 증세방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이슈'에 밀리면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되기 십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법인세율 및 소득세율 인상 논란에 여론이 함몰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손쉽게 원하는 것들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율 인상 및 단계적인 대주주 범위 확대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면적인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시행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미 예고된 바 있는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 축소도 마찬가지.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이지만, 최종적인 목표지점은 '폐지'다.
법인세율 인상과 함께 단행이 결정된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대한 각종 투자세액공제 축소도 법인세 실효세율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불과 2년 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대기업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큰 폭으로 줄이는 것 또한 세수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정부업무대행단체 면세사업을 대거 과세사업으로 전환하고 군골프장 및 숙박시설 부가가치세 과세 전환 등 부분도 증세 정책기조에 부합하는 제도 개편이다.
고쳐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지만 정부의 세수확대에 유무형의 기여도가 큰 것으로 알려진 성실신고확인제도를 2018년~2020년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대폭 늘리는 부분도 주목된다.
또한 2019년 시행을 전제로 만들어진 부가가치세 대리납부제도 또한 그동안 탈루된 부가가치세를 양성화할 동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는 향후 적용대상 확대 여부에 따라 폭발적인 세수증대를 몰고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해외신용카드 사용 및 인출내역을 관세청이 실시간으로 카드사 등을 통해 제출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획기적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분기별 총액 5000달러 이상인 경우만 자료제출 대상이었지만 정부는 아예 물품 및 현금인출 건당 600달러 이상(해외여행자 휴대품 면세한도 기준)인 경우까지 자료제출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부분은 법인세율 및 소득세율 인상안과 함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기타소득 필요경비율을 대폭 하향조정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율도 하향 조정한 조치도 증세 드라이브의 한 지류다.
이러한 제도 개편에 따른 세수효과는 현재로서는 예측 불가능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제대로 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과세베이스'를 넓히는 조치라는 측면에서 꾸준한 세수증대 효과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증세는 위험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세금을 늘리다 정권까지 무너지는 사례를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망설이지 않고 위험한 선택을 감행했다.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9년 동안 이어져 온 보수 정권의 정책기조가 만들어 낸 양극화 심화 등 부정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반발심, 국민들의 그 피로감이 이같은 정책방향에 대한 우호적 여론으로 치환됐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성공적으로 건널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