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물품을 수입하여 공급하는 과정에서 모회사의 지시에 따르거나 수입물품에 관한 경제적 위험을 모회사와 나누는 등 일반적인 거래와 다른 사정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가장행위라거나 조세회피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계약 내용과 다르게 거래를 재구성하여 과세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물품의 수입에 대해서는 수입자가 해외 수출자에게 지급하는 수입가격을 기초로 관세가 과세된다.
상거래 관행상 명의상의 수입자가 해외 수출자의 국내 판매대리인에 불과하고, 수입자로부터 물품을 구매하는 국내 구매자가 실질적으로는 해외 수출자로부터 직접 수입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국내 구매자가 수입자에게 지급한 금액으로 관세가 과세된다. 따라서 수입자가 해외 수출자에게 지급한 금액보다 수입자의 이윤만큼 관세의 과세표준이 증가하게 된다.
이 사건은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물품을 수입하면서 지급한 금액을 관세의 과세표준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수입자인 자회사는 수출자인 모회사의 지시에 따라 국내 구매자와 매매가격을 협상하고 거래조건을 정하였다. 또한 수입가격을 정할 때에도 모회사와 독자적인 가격협상을 거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자회사는 재고관리의 위험을 부담하지 않았고, 모회사와의 수입계약 조항을 통하여 납품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대금결제에 관한 위험도 사실상 부담하지 않았다. 과세관청은 이를 감안해 자회사가 모회사의 국내 판매대리인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사실상의 수입자인 국내 구매자들이 지급한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과세관청과 달리 수출입거래의 당사자는 국내 구매자들이 아니라 자회사라고 보았다. 앞에서 본 사정들은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에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협력관계에 따랐거나 해당 물품거래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반영되어 자회사가 수입거래 과정에서 수입가격의 1~2% 정도의 판매이윤을 얻는 데 그쳤고, 이러한 판매이윤이 통상적인 경우보다 과다하거나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자회사는 국내 구매자들의 입찰에 참가한 후 자신의 명의로 판매계약을 체결하였고, 실제로 국내 구매자들에게 물품의 공급자로서 계약상 책임을 이행하였다. 또한 물품이 수입항에 도착한 이후 국내 구매자들이 지정한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소유권은 자회사에 있었고, 국내 구매자들에 대해 그 멸실의 위험과 납품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도 자회사였다.
그리고 국내 구매자들에 대한 물품대금채권도 자회사에게 있었다. 이를 보면 국내 구매자들도 모회사가 아니라 자회사를 거래상대방으로 하여 거래할 의사였던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세법에는 세금을 계산할 때 거래 등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른다거나, 둘 이상의 거래를 통하여 세금을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면 경제적 실질에 따라 이를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과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를 실질과세원칙이라 하고, 관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만 실질과세원칙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항상 논란이 되어 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하여 납세자의 선택한 거래를 세법 적용에서 부인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즉 납세자의 선택한 거래가 가장행위라거나 조세회피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면 실질과세원칙을 이유로 이를 다른 거래로 재구성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납세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과세관청이 보기에 불합리하거나 세부담이 적어진다는 이유로 거래를 쉽게 재구성하여 과세할 수 있다면 납세자는 항상 불안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주체들에게 일률적으로 세부담이 높은 방식을 택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와 같이 강요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이념에도 맞지 않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실질과세원칙을 이유로 거래를 재구성하기 위한 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대법원2017.4.7.선고 2015두49320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