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한번은 보고 싶었던 '합격'이란 단어를 막상 보고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혹시 잘 못 봤나?"이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합격 당일 몇 번이고 확인을 한다.
그래서 난 아예 출력을 해서 난 붙여놨다. 혹시라도 전산에서 오류로 사라질 것을 대비해서 말이다.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나면 이 기쁜 소식을 제일먼저 연락하는 사람의 순서가 정해져있다. 미혼은 대부분 부모님이고 기혼자들은 배우자일 것이다. 본인의 수험생활로 인해 제일 고생한 순서라고나 할까.
온라인 스터디모임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공부하는 이유와 꿈'에 대해서 신청단계에서 질문을 하다보면 많은 수험생들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빨리 합격해서 효도하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수험생활 과정에서 부모님이나 배우자 등은 분명히 희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서 한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렇게 고생한 가족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나면 이제부턴 자랑을 하기 위해 연락한다. 친구, 회사동료 등. 마지막이 같이 고생하며 공부한 스터디멤버들인 경우가 많다. 정말 조심스럽다. '먼저 전화할까 아니면 올 때까지 기다릴까'
나의 경우에도 혹시라도 나만 합격했을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가장 나중에 스터디멤버에게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도 함께한 분이 합격해서 너무나 행복했던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
스터디를 할 때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놓아도 합격의 명암이 엇갈리는 순간 남보다 더 연락하기 어려운 관계가 된다.
합격을 확인했고 연락을 하며 축하를 받은 후에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합격자 생활로 접어든다. 당일 날 합격자 발표 순간을 기준으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불과 1분 사이에 등에 엄청난 짐을 짊어진 수험생에서 훌훌 짐을 벗어던진 합격생의 삶으로 건너간다.
최소 3년 많게는 6~7년씩 오로지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일매일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어디 여행한번, 친구모임 한번 맘 편하게 가보지 못하며 살아야 했다면 그 1분 남짓을 과정으로 유쾌 상쾌한 후련함의 세계로 순간 이동한다.
어제 보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은 달라진다. 어찌나 예쁘고 청명하던지. 나의 경우에는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아침공부를 위해 눈을 떠야하는 압박감이 사라진 것이다.
세무사회에서 연락이 오고 수습일정을 체크하다보면 막연히 큰 언덕이 나를 잡아주는 안도감을 느낀다. 혼자 공부할 때는 세상 무엇도 나에게 요구만 하지 도와주지도 길을 알려주지도 않는 외로움이 있었으나 합격과 동시에 누구나 알아주는 세무사라는 전문자격사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힘이 된다. 여기에 630여명의 동기도 있다.
은행이 제일 먼저 합격생을 대우해준다. 그 유명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험생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였던 은행이 합격과 동시에 제일 먼저 달려온다. 그만큼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진 것이다. 직업란에 어제까지 '무직'이었지만 '세무사'로 적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점 적응해간다. 츄리닝에서 양복바지로 독서실에서 사무실로 컵밥에서 회식장소로 바뀌어 나간다.
그런 적응의 기간이 있어야 새로운 세계에서 편해질 수 있다. 처음 시험을 도전 하던 시절 수험생활이라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듯이.
그러다가 어느 날 '나에게도 그런 합격의 환호를 부르던 때가 있었나?'하는 시간이 또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고 지금은 생생한 환호의 열기 속에 빠져들 시간이다. 그런 순간은 이때 밖에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