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현재 말기암 환자다. 의사는 3개월정도 남았다고 얘기한다.
하루하루 수척해지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아버지! 너무 걱정마세요. 돌아가실때 많이 아프지는 않다고 하네요"
아버지의 걱정은 죽음이아니라 그 과정상 고통에 대한 공포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은 통증을 잘 못느끼는 부위다.
"그러니? 그럼 내가 복 받은 거로구나"
아버지와 나는 40살 터울이기에 어릴 적 친구들과 비교하면 항상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의 모습에 창피했다. 그래서 난 소풍이나 운동회에 아버지를 오지 마시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대학 들어가던 해에 아버지가 환갑이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아버지는 형, 누나들이 할 수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연습이 돼있다. 당신이 생각해도 마흔너머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예쁘겠는가? 난 아버지로부터 그 흔한 큰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다. 매는 고사하고.
그러다보니 난 사춘기시절부터 엄마보다도 오히려 아버지와 소소한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학교에서 상장이라도 받는 날이면 아버지에게 먼저 알렸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우리아들! 대단하다"고 하시며 칭찬을 해주셨다. 온 동네분들은 물론이고 멀리 있는 친인척들에게까지 자랑을 하셨다. 청소 잘한다고 상장을 받든, 개근상을 받든.
그렇게 마흔이 넘어 얻은 아들이 40살이 넘어 세무사 공부한다고 할 때도 아버지께선 한결 같으셨다.
시험준비를 시작하고 6개월만에 1차를 붙었을 때는 정말 떠나갈듯이 기뻐하셨고 이미 친척들 사이에서는 난 최종합격자로 이미 둔갑해 있을 정도였다.
2차를 한번 떨어지고 두번, 세번, 네번 떨어질 때마다 난 그 다음날이면 바로 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갔다. 나의 공부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송무락이 시작했으니 송무락이 끝내야한다' 그 믿음에는 평생 나를 믿고 기다리는 부모님이 있었다.
이미 그 사이 어머니는 돌아가셨기에 유일하게 내 합격을 한치의 사심없이 축하해주고 기뻐해주는 분을 위해 난 바로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아버지 방에는 내가 합격자 발표날 출력한 합격자증명서와 각종 다른 자격증 출력물이 벽면에 아직도 붙어있다. 벌써 수 년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난 저걸 볼 때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단다. 참 너 대단하다"
이제 난 3개월이 지나면 내 상장을 벽에 붙여놓고 기뻐할 사람이 더 이상 없다. 물론 내가 상장 받을 일도 별로 없을테지만.
아버지와 돌아오는 길에 야윈 손과 어깨를 꼭 안고 토닥여주며 귓가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옆에 있어주셔서"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늦지 않았음에 정말로 감사한다. 이 글을 읽는 수험생 모두 그러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