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성당터
서귀포 성당에서 예술의 전당 쪽으로 가다 오른쪽 샛길로 10분정도 가면 제주도에서 몇 안되는 논농사가 가능한 곳이 나온다. 화산분화구로 형성된 비옥한 호근동 한논 지역 신목이 있다.
이 곳에 1900년에 구마슬(Marcel Lacrouts) 신부가 성당을 지으려다 토착민들과 분쟁이 있었다. 갑오경장 후 조선정부의 재정이 중앙정부로 통합되면서 척박한 땅 제주도에도 가혹한 세금수탈이 일어났다.
1901년 중앙정부에서 봉세관으로 부임한 강봉헌은 제주도에서 가옥세, 수목세, 가축세, 마장세, 어장세등 각종 세금을 무리하게 과세했다. 세금징수 과정에 불량 천주교도들을 세금 징수의 조력자로 쓰면서 '세폐'라 불릴 정도로 행패를 많이 부려 토착민들의 반발을 사게 됐다.
유생 출신 선비는 천주교도들의 횡포를 적은 글을 써서 비난했고 그 결과 천주교도들과 토착민들과의 분쟁이 발생했다.
이 분쟁은 끝내 오신락이란 노인이 천주교도들에 붙잡혀 가 죽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고종의 특혜를 받은 천주교 신부에 기대 각종 특혜를 누리기 위해 불량배들은 천주교에 입교했다. 불량배들은 악덕 봉세관의 앞잡이가 돼 세금 징수를 돕고 행패를 부려 제주도민과 천주교간 갈등으로 변하게 됐다.
한편 이 곳 대정군수 채구석은 악덕 봉세관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상무사라는 조직을 뒤로 도우며 천주교도들의 횡포를 비난하는 토착 세력을 부추겼다.
지역 유지이자 양반 출신인 상무사 대표 오대현의 첩을 천주교도인 아전이 보쌈해 강간한 사건이 벌어지자 오대현을 장두로 해 봉세관의 가혹한 세금징수와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맞서 3개 군민을 모았고 제주성 앞 황사평에 모여 민주적 항의를 위해 제주성으로 가기로 했다.
한논성당(요즘은 하논성당으로 부른다) 주임 신부인 구마슬 신부가 이끄는 천주교도들이 이들 시위대가 제주시로 가는 도중 하룻밤 자고 있던 한수풀(한림 명월진)에서 시위대들을 기습해 총격을 가하며 사망사고가 났다.
항의 시위대 장두였던 오대현이 잡혀가자 시위대들은 민란군으로 변해 새로 두 개의 부대를 편성해 대표를 뽑아 동쪽 부대는 제주도 동쪽으로 돌아 제주로 가고 다른 한 부대는 서쪽으로 돌아 제주 황사평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동쪽 부대의 책임자는 방성칠의 난에 가담하였던 강우백이고 서쪽 부대의 책임자는 오대현의 측근이었던 노비출신 이재수였다.
민병대들이 제주성 인근 광양촌에 모여 있을 때 구마슬 신부와 천주교도들은 또 기습을 해 총격을 가해 농민 18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중상을 입자 민란군들은 제주성을 포위했다.
민란군들의 포위로 식량이 떨어지고 성안에 백성들이 성문을 열자 이재수가 이끄는 민란군이 5월 28일 제주성에 입성해 관덕정 앞에 진을 치고 천주교도들을 색출해 6월 8일까지 천주교도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약 317명의 천주교도들이 희생됐다 한다. 이 숫자는 광주 사태의 공식적 사망자 수를 넘는 조선말 무렵의 최대 비극적 사건이 됐다.
조선시대 말기 기독교 박해와 순교사건 이후 일본 세력이 극성을 부리자 청나라는 서양 세력을 끌어들여 조선에서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조선 정부에 서양 각국과 수교를 권장하고 선교사들이 선교의 자유를 갖게 되면서 가톨릭 측은 특권을 갖게 됐다.
이재수의 난은 제주도에서 불량 천주교도들이 봉세관의 조력자인 세금징수원이 되어 횡포를 부리며 민란으로 번져 참혹한 살육의 기록을 간직한 조세 저항의 비극적 역사로 기록됐다.
이재수의 난의 중심에 있었던 구마슬 신부가 제주도 선교를 위해 시무하였던 하논성당터는 이재수의 난으로 불타버렸다.
큰논이란 의미를 가진 비옥한 하논지역은 제주 4.3사태로 마을이 또 다시 불타 주민들이 다 떠났다.
그러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한 비옥한 지역이어서 주민들이 되돌아와 정착하게 됐다. 폐허 속에 돌더미만 남아있는 하논 성당터는 천주교 성지순례지로 둔갑해 버렸다. 조세항쟁의 역사인 이재수의 난은 돌더미 속에 묻혀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