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세금을 더 걷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회복 지연으로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기업 관련 세금을 중심으로 세입예산 대비 세수(稅收) 부족액은 지난해 4조 3천억 원에 이르렀고 올해는 5조 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금은 덜 들어오는데 참여정부 들어 사회·복지 지출 증가, 국책사업 확대 등으로 써야할 돈은 오히려 늘어 재정적자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정부가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세수를 늘리는 세제개편이 필요하다는 데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세제의 기본원칙인 공평과세와 근거과세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세금 강화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
올해 세제 개편으로 내년에 더 들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세수는 신용카드소득공제율 인하로 1800억원, 소주 등에 대한 주세율(酒稅率) 인상으로 3200억원, 난방용인 액화천연가스(LNG) 세율 인상으로 4600억원 등이다. 이 증가되는 세금의 부담자가 주로 근로소득자를 비롯한 중산·서민층 가계라는데 세부담의 공평성에 문제가 있다. 부동산관련 세금강화로 늘어나는 세금까지 감안 할 때 중산·서민층 가계가 내년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세금은 급격히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영업자와 근로자 간 세부담 불공평이 경제·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지난해 봉급생활자들의 근로소득세는 정부 예산보다 19% 더 걷힌 반면, 자영업자들의 종합소득세는 12% 덜 걷혔다. 2005년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 자영업자 가구의 씀씀이가 근로자 가구보다 훨씬 넉넉한데도 납부한 세금은 근로자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올해 정부 세제개편안은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구체적으로 신용카드소득공제율 인하를 비롯해 세금우대 대상 축소, 장기주택마련저축 비과세 대상 축소, 주택자금소득공제 대상 축소, 국외 근로소득 비과세 한도액 인하 등이다. 이로 인해 근로소득자는 올해 세제개편의 최대 피해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자영업자와 근로자 간 세부담이 불공평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봉급생활자의 소득은 유리지갑처럼 드러나고 있으나,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은 아직도 50%선에 머물고 있는 데 있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고 세정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이를 소홀히 하면서 세금거두기 편한 봉급생활자를 비롯한 중산·서민층의 주머니를 털어 손쉽게 세수를 확보하려는 것은 자영업자와 근로자간 세부담 불공평을 더욱 심화시키는 정책으로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에서 중소 자영업자의 납세편의를 내새워 새로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라면 간편납세제도는 사업자가 국세청이 개발한 ‘표준전자장부’를 이용해 오는 2007년부터 중소사업자들이 세금을 손쉽게 신고·납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간편납세제도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납세자 스스로 간편납세제도를 이용해 세금을 신고할 수 있는 능력, 즉 성실한 납세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근거과세와 공평과세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장부기장비율은 51%로서 OECD 평균인 80%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또 우리니라는 자영업자의 세부담이 근로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업자의 납세의식은 성실한 납세의무 이행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영업자에 대한 지속적인 과세표준 현실화가 필요하다.
중소 사업자의 납세의무 이행능력이 미진하고 성실납세의식이 부족한 현 시점에서 조세의 기본원칙인 근거과세와 공평과세를 후퇴시킬 소지가 있는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러므로 새로운 간편납세제도 도입은 장부기장인원이 80%에 달하는 등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후에 다시 거론하고, 당분간 현행 간편납세제도인 간편장부, 기준경비율, 단순경비율 제도를 유지하고 장부기장인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도입하고자하는 새로운 간편납세제도 적용대상 사업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 거론되고 있는 연간 매출액 10억원 이하 사업자로 할 경우 법인은 총사업자의 60%, 개인 사업자는 98%가 간편납세 대상이 된다. 이는 예외 신고방법인 간편납세제도에 의한 소득세신고 사업자가 기장과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정상신고방법에 의한 소득세신고 사업자 보다 많은 극히 비정상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소득세제도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증빙과 기장에 의한 원칙적인 소득세신고제도만 있을 뿐 어떠한 간편납세제도도 없다.
자영업자의 소득금액은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장부기장으로 드러나는 인건비는 고용보험료와 산재보험료를 부과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새로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할 경우 이 자료가 부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새로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소득세와 관련된 주변제도 운영에는 문제점이 없는지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간편신고제도’는 ‘정상신고제도’와 배치되는 제도로서 사업자가 세금을 줄이는 방편으로 이용하기 쉽다. 현행 부가가치세제에 있어 간편납세제도인 간이과세제도를 자영업자가 매출을 누락시켜 세부담을 줄이는 제도로 활용하고 있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이미 간편납세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목적이 모호한 새로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옥상 옥(屋上 屋)이다. ‘예외’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또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간편납세제도는 지금까지 쌓아온 소득세 과세인프라를 허물면서 자영업자와 근로자 간 세부담 불공평을 더욱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간편납세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3%~4% 대의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 우리 경제가 5%이상 성장으로 침체된 경기가 되살아나 세수가 늘어나지 않는 한 세수부족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부는 세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할 때다. 올해와 같이 땜질식 세제개편으로 세금 거두기 편한 근로소득자 등 성실 납세자와 중산·서민층의 부담을 증가시켜 세수를 늘리는 것은 공평과세를 후퇴시키고 소비를 감소시켜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되며 장기적으로 세수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게 된다.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장기적으로 원활하게 확보하려면 세수가 자연적으로 늘어나던 고도 성장기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바닥을 기고 있는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등으로 경제가 되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는 늘어난다. 그리고 근거과세와 공평과세 기반을 더욱 확충하는 조세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도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상근 세무사(명지전문대 교수·경영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