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빈부격차가 보편화된 대한민국 사회 저변에는 '반(反)부자 정서'가 여론이라는 이름을 빌려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반 부자 정서는 노력 없는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큰 거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 정서적 프레임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세제가 우리 세법에 여전히 살아 숨쉬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최고 세율 50%(과세표준 30억원 초과)인 '상속(증여)세'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이 많으면 많을 수록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부의 국가환수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 부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인들은 틈 나는대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평생을 일군 가업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아예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 '돈 많은 사람'에 대한 반감이라는 국민 정서가 걸림돌이다.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는 자산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재분배적 기능'이 강조되면서 세계 유일의 50% 세율을 가진 현행 상속세 과세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사정을 고려하면 상속세의 재분배적 기능 자체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다만 현재 세계적인 추세와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경제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세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한 상황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초부터 '폭탄세율', 상속세제 변천사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상속세령'을 제정·공포했다.
상속세의 시초다.
1950년 국회가 상속세법(증여세법 별도)을 입법했는데 15단계 과표구간에 최고세율 90%(최저세율 20%)로 사실상 국가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수준이었다. 1952년 증여세법이 폐지되고 상속세법에 편입됐다가, 1996년 법명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으로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속세법이 전면개편(1996년)되기 이전까지 세율은 수 차례 조정됐지만 고세율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특히 1967년 세법개정으로 세율이 5~70%로 내려갔다. 국세청의 세원파악 기술이 한참 부족했던 시기였다는 점이 감안되어 자진신고 납부에 대한 인센티브 성격인 '신고납부세액 공제제도'가 만들어졌다.
1974년 재차 세율이 10~75%로 상향조정됐다가 1978년 7~67%로 낮아졌고 1981년 7~60%, 1988년 5~55%로 지속적인 세율인하가 단행됐다. 1993년 최고세율을 50%로 내렸고, 세대를 건너뛴 상속에 대한 '할증과세(현재 30% 할증세율)' 체계가 만들어졌다.
1996년 이후에는 기본 골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핀셋처럼 콕 집어 부분적인 손질만 했다.
1999년 최고세율(50%)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을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높였다. 2000년 이후에는 세율 변동은 없었다. 주로 가업상속 공제비율이나 공제한도 등을 올린다든지, 이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사후적 규제를 촘촘히 짜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왔다.
부자들만 내는 세금, '상속세'
현재 거주자인 피상속인이 사망할 경우 최소 5억원(일괄공제), 배우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라면 10억원까지 상속공제가 인정된다. 다시 말해, 상속재산이 10억원을 넘지 않으면 상속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 '부자들 세금'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부모 등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국민 중 약 97%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현재 피상속인 22만9828명 중 상속세를 10원이라도 낸 상속인은 6966명이었다. 비율로는 3% 수준이다.
상속세수(증여세수 포함)는 전체 세수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상속세수는 2017년 기준 약 2조4300억원이고, 사전상속에 해당하는 증여세수를 합하면 약 7조원 정도다. 국세수입(2017년 기준 265조4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로 죽겠다는 외침에도 '메아리'가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과세자의 비율이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돈)있는 사람이 당연히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단순 논리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정경유착 및 정부특혜 등 '비정상적 방법으로 부가 축적됐을 것이라'라는 반 기업 정서가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히다.
바보들만 내는 세금, '상속세'
상속세는 흔히 '바보세'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작 세금을 내야 할 대상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다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도 상속세 납세자의 숫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이유를 이 부분에서 찾기도 한다.
아예 재산을 숨긴다거나 이런 저런 수를 써서 공제한도에 근접한 상태를 만들어 과세망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국세청의 세원파악 기술이 고도화된 현재는 편법수단 동원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오히려 더 고도화된 편법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왜 상속세 회피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따져보는 일이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유혹의 원인을 없앤다면 편법을 동원해 과세망을 빠져나간 이들을 쫓는데 들어가는 행정력 등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실제 세계 각국은 상증세 자체를 폐지하거나 다른 형태의 체계를 도입하거나 세율을 낮추는 추세다. 하지만 유독 대한민국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8년 상속·증여세율을 인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부자감세' 비판에 직면, 꼬리를 내린 '트라우마'를 가진 정부와 당시 정부안을 뭉겠던 정치권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속세제가 소득과세에 대한 '보완장치'라는 점에서,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 기업인들의 '경영의욕'을 살려 경제활성화의 마중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번 기회에 상속세 체계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각종 공제를 현실화시키면서, 중장기적으로 세율인하라든지 생전에 큰 세금 부담 없이 다음 세대에게 재산을 증여해 이를 경제활성화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