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샌더슨 지음, 최은아 옮김, 한국경제신문
◆…<사진: 한국경제신문>
실감나는 전쟁 신으로 유명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마지막 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2차대전 막바지 미국 공수부대인 이지 중대는 강 건너 진지를 구축한 독일군을 포로로 잡아오라는 대대장의 명령을 받는다. 독일군 2명을 잡아오지만 그 과정에서 부대원 1명도 전사한다. 다음날 대대장은 똑 같은 명령을 다시 반복한다. 노련한 중대장인 윈터스 소령은 '알겠다'고 말한 후 풀이 죽은 부대원들을 소집하고 "오늘 밤은 다들 푹 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리고 당부한다. "다들 입 조심해. 이건 명령 불복종이야." 부대원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다음날 윈터스는 '두 번째 작전을 실행했으나 포로를 잡아오는 데는 실패했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히틀러는 이미 자결했고 전쟁이 거의 끝나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아군 피해를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 보고에 대한 대대장의 두터운 신뢰는 '수고했다'로 마무리돼 부대원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윈터스는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게 능사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때로는 규칙과 원칙을 넘어서는 지혜가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는 귀중한 생명을 구한 사례이리라.
# 사람을 살리는 생각 2
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2015년 영화 '자객 섭은낭'의 주인공 섭은랑(서기)은 사부로부터 "너의 검술은 완벽하지만 아직 인륜의 정을 끊지는 못했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부패한 관리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정작 목표의 코 앞에 칼날을 들이댔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어린 아이 때문에 죽이지 못하고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섭은랑은 냉정한 자객 이전에 따듯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순간의 선택에 의해 사람을 살리는 결과가 됐다. 사부의 지적처럼 인륜의 정을 끊지 못한 그 찰라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이 바뀌는 순간'(부제: 긍정을 이끌어내는 스위치, 캐서린 샌더슨 지음, 최은아 옮김, 한국경제신문)은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귀중한 사례와 저자의 분석을 담은 신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오랜 시간 '긍정 심리'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인생을 바꾸는 생각의 원동력을 '직관'에서 찾고 있다. 생활의 불편함, 곤란한 상황 등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지만 그런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의 뇌가 직관적으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게끔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건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프린스턴대학에 다니던 B.J. 밀러는 술을 마시고 전기셔틀 기차에 올랐다가 큰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그는 두 다리와 한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했고, 큰 후유증까지 얻었다. 한순간에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된 밀러는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에 절망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로 결심한다. 치료를 마친 그는 이듬해 패럴림픽에 배구팀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이후 자신과 같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위한 완화치료전문가가 되었으며, TED와 같은 수많은 강연장에 서서 자신의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저자는 생각은 힘과 방향성이 있으며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변화는 아주 사소한 행동과 의문에서 시작된다. 가령 이런 생각들이다. SNS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 우울해지고 고독해지는 이유는 뭘까. 값비산 유명 상표의 약은 일반 약보다 통증 완화에 더 효과적인 까닭은? 수술 환자의 회복 속도는 자연이 보이는 전망 좋은 병실의 환자가 그러지 못한 환자보다 빠르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평균 7.5년 더 오래 산다. 얼룩말은 궤양이 생기지 않는다는데 그 원인은?
안 좋은 예감이 늘 현실화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노화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뜩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 스스로의 삶이 언제나 시련으로 가득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책장을 넘겨볼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을 바꾸자. 윈터스 소령, 섭은낭이 되자. 320쪽. 1만44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