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 안 된 이용실적에 쌓인 포인트 '59억점'
납세제공담보 등 매우 제한된 사용처 영향 커
국세청 연구용역 결과서 "용도 확대 필요" 제시
포인트 부여, 세액 아닌 '납기 내 납부' 의견도
세금을 납부할 때마다 쌓인 세금 포인트는 '계륵' 같은 존재다. 비행기를 탑승했을 때 적립되는 포인트로 나중엔 일정 거리를 무료로 갈 수 있지만, 세금 포인트로는 세금(국세)을 낼 수 없다. 주로 세금 납부를 미루는 용도(납세담보)로만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용처가 '2%' 부족하다는 인식이 짙다.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세금 포인트제에 대해 국세청이 손질에 들어갔다. 조세지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인트의 사용처를 더 넓히려는 것이다. 특히 포인트를 부여하는 잣대를 세액이 아닌 '기한 내 신고·납부 여부'로 바꾸는 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 성실납세 우대라더니…알아도 못 쓰는 혜택 |
세금 포인트제는 2004년 만들어졌다. '세금을 성실하게 내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회인식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개인은 2000년(2004년부터 부여)부터 근로소득세·종합소득세·양도소득세를 낼 때마다, 법인은 2012년(2014년부터 부여)부터 법인세를 낼 때마다 포인트가 쌓여 왔다. 자진납부세액 10만원당 1점(고지납부세액은 10만원당 0.3점)씩 적립되는 구조다.
세금 포인트는 주로 징수유예·납기연장을 요구할 때 납세담보 면제 혜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용할 땐 납세액 10만원당 1점을 담보로 내면 된다. 유예신청 대상 금액은 이 계산법(세금포인트×10만원)에 따르며, 연간 5억원 한도다. 예컨대, 올해 부가가치세 예정 고지 금액이 1억원이라고 치자. 800포인트를 보유했다면 8000만원까지 납세담보 제공 면제에 사용하고 나머지 2000만원에 해당하는 납세담보만 제공하면 된다는 소리다.
문제는 포인트의 사용 범위가 좁다는데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9년 현재 개인은 약 59억점이 쌓여 있는데, 약 3100만점(사용실적 0.53%)만이 쓰였다. 법인에서 포인트를 사용비율도 1.79%(약 5억5800만점 중 1000만점)에 불과했다. 제도가 만들어진지 16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용률이 매우 미미한 것이다.
지난 8월말 납세담보 목적 외에 온라인할인쇼핑몰에서 포인트를 사용(물건 가격이 10만원 이하인 경우 1포인트를 쓰면 5% 할인 가능)할 수 있도록 용도가 넓어졌는데, 아직까지 효과성이 확인됐다는 자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 조세지출 부담 없는 선에서 용도 확 늘어나나 |
"민원서류 발급이라든지 박물관·고궁 입장하는데 드는 비용 등을 세금 포인트로 대납할 수 있게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국세청 의뢰로 최근 내놓은 '성실납세자 우대제도의 실효성 제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세금 포인트의 용도를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국세청은 용역 결과를 정책마련 과정에서 참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포인트 사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구용역을 주관한 홍범교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은 "건전한 납세 문화의 조성이라는 무형의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제도를 계속 유지·개선시킬 여지는 있다"며 "세금 포인트의 용도를 다양화함에 따라 다소 조세지출이 수반된다면 이는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민원서류 발급 비용을 포인트로 대납할 수 있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 인터넷으로 민원서류를 발급했을 땐 무료인 서류도 있으나, 방문 신청은 수수료가 발생한다. 대부분 민원서류 1~2건을 발급받을 경우엔 수수료가 소액이라는 점에서 혜택의 정도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포인트 대납에 대한 다른 사례로는 문화재(고궁 등)라든지 정부가 주관한 문화예술 공연·스포츠 행사에 입장했을 때다. 현재 국세청에선 이를 두고 관계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간제 보육서비스(6~36개월 미만 영아 대상)는 일정 비용(시간당 10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보고서는 이를 포인트로 대납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할인이 성실납세자 개개인에 대해선 크지 않은 반면, 전체적으로 합산하면 공공기관의 수지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 지자체에선 '성실하게 신고 시' 혜택 주는데… |
주요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이텍스(ETAX) 마일리지 제도다. 지방세를 전자적인 방법으로 기한 내 전액 납부했다면 마일리지를 준다. 모든 성실납세자가 대상이 된다는 소리다. 세액이 30만원 이하일 땐 건당 350원, 30만원을 넘겼다면 850원의 마일리지가 쌓인다. 마일리지로 이텍스 신고분을 제외한 지방세(면허세, 자동차세, 재산세 등)를 납부할 수 있다. 대중교통카드(티머니) 충전도 가능하다.
보고서는 이 사례를 들어 세금 포인트제를 확 뜯어고치는 안을 제시했다. 포인트 부여 기준을 납부세액에 비례하지 말고, 납기 내 성실하게 납부한 모든 납세자로 하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비록 납부세액이 크지 않더라도 체납 없이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대다수의 성실납세자에게는 작은 혜택이나마 우대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금을 세금 포인트에 연계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 예컨대, 최소 1000포인트 이상의 적립한 납세자를 대상으로 100포인트가 증가할 때 마다, 기존 연금 수령액에 매월 1만원(연 12만원)의 추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2050년대 중반이 되면 국민연금기금이 고가될 것이라고 보는 재정전망이 나온 상황에서, 이러한 혜택이 연금의 지속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보고서는 "세금 포인트의 경우 용도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용처를 확대하지 않고 홍보만 강화해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