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물납제도(物納制度)' 란 것을 운용하고 있는데 내야할 세금이 일정액(세액 1000만원 이상 등)을 넘을 경우 현금 대신 주식이나 부동산 등으로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세금이 부과됐는데 당장 세금으로 낼 현금이 없을 때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재산을 급히 처분하면서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등 납세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
납세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만들어진 좋은 제도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탈세와 관련한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일부 납세자들에 의해 악용돼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납세자들로부터 물납을 받은 비상장 주식 2150억여원 어치를 고작 1170억원을 받고 처분해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국고 손실을 자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물납받은 비상장 주식을 처분한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엽기적' 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지난 1998년 13억원 어치의 비상장 주식을 물납 받은 뒤 이를 1/10 가격인 1억3000여만원에 처분해 버렸다.
지난 1999년도에는 70억원 어치의 물납된 비상장 주식을 17억원에 매각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100억원 어치의 물납 비상장주식을 38억원에 처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사례다.
이처럼 정부가 납세자로부터 물납을 받은 비상장 주식을 매각하면서 제대로 된 값을 받은 경우가 사실상 전무해 정부의 물납재산 사후처리가 '형편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비상장 주식 물납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특히 세금을 물납한 경우 현금으로 세금을 낼 때와 비교해 세부담을 줄일 수 있고 게다가 상장 주식에 비해 '시장성' 이 별로 없는 비상장 주식을 물납했다가 납세자와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싼 가격에 도로 매입하는 등 '탈세' 의 수단으로 인식돼 있는 형편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비상장 주식 물납을 통해 탈세를 일삼는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 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돈 많은 부유층의 탈세를 '제도와 행정' 양측 면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돈 많으면 대한민국이 최고" 라는 말이 쓰이곤 한다. 대한민국의 부유층에게는 이 같이 유용한 '탈세수단' 까지도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 하루 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며 성실히 세금을 내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 지 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