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사이에 세계 무역은 큰 변화를 겪는 3가지 사건이 연거푸 나타났다. 2018년 트럼프가 미-중 무역전쟁을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2020년 중국 우한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세계적 유행을 시작했고,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생했다. 전쟁과 전염병은 국가 간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경제활동을 하도록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미-중 간의 기술전쟁이라는 일관된 흐름이 있고, 코로나가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속도를 높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러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대 미국.유럽같은 민주주의 진영 간의 정치적 동맹 위주의 무역을 촉진시켰다.
이제 ‘세계화’라는 단어처럼 전 지구적 경제협력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최대의 비용 효율화를 추진했던 무역은 위기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중심의 무역은 전환되고 있다. 아울러 국가 간의 갈등, 팬데믹의 지속, 자원 보유 국가간의 전쟁은 불확실성의 정도를 매우 높여놓았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Ngozi Okonjo-Iweala) WTO 사무총장은 이번 분쟁으로 인한 경제적 반향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두 나라의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영향을 전 세계에 주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제 규모는 양국을 합쳐도 세계 GDP의 2%에 불과할 정도로 작고, 대다수 국가들과 양자 교역 규모가 제한적인 데다 금융 연계도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전 세계 밀 수출의 30%, 옥수수와 광물자원, 비료 및 천연가스는 20%나 차지하는 주요 상품 생산국이다. 석유의 경우도 11% 비중을 차지한다. 전쟁의 화마 속에 석유와 천연가스 국제 가격이 폭등했고 밀과 식량 원자재 가격도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전쟁은 세 가지 채널을 통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첫째, 식품 및 에너지와 같은 원자재 상품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심화를 통해 소득 가치를 잠식하고 수요를 억제한다. 둘째, 주변국 경제가 경제적 제재로 인한 교역과 공급망, 송금 중단과 급증하는 난민의 유입에 따른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셋째, 기업의 신뢰 감소와 투자자의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부담으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재무적 어려움을 촉발하고, 신흥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촉발될 수 있다.
글로벌 공급체계의 변화
정치적 갈등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유럽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이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는 코로나와 합하여 글로벌 공급망 체계의 혼란을 크게 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컴퓨터. 통신. 센서 및 레이저. 해양.우주항공 등 7개 분야, 57개 품목에 대하여 대러시아 수출 통제를 발표하였다. 더불어 미국, EU, 일본, 캐나다 등은 러시아의 WTO 최혜국대우 지위를 취소하고, 특정 러시아 은행을 SWIFT에서 배제하고,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외환보유고 동결조치하였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는 대러 제재에 동참한 국가를 비우호국으로 지정하여 채권 상환의무에 대한 보복조치와 수출통제 조치 등을 통해 맞대응하고, 향후 대상국이 확대되고 제재 강도가 더 높이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양 측의 양보없는 경제제재는 상호 간의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시도로 나타났다. 현재의 국제 분업은 적시 생산 및 글로벌 단일 소싱으로 무역 거래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두 가지 조치 모두 투입물과 원자재의 적시 납품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의존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공급망 관계가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후 중국 생산공장과 항구 봉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중으로 인한 이러한 공급망 중단으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세계는 보았다.
세계 각국에 공급망을 구축한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OEM)인 독일 폭스바겐은 중국 비중을 낮추고 유럽과 미국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지역별 자동차 생산 비율을 조절하는 등 공급망 전략을 대폭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OVID-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공급망 경색여파를 호되게 겪은 결과, 가격 경쟁력보다 안정성을 더 중시하게 됐다는 평가다.
앞서 폭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스(Herbert Diess) CEO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COVID-19 팬데믹보다 지역 경제에 훨씬 더 큰 충격을 줄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단은 엄청난 가격 인상, 에너지 부족,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는 유럽과 독일 경제에 특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유럽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8%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해 7%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관계에서 경제의 비중을 다시 보여주었다. 과거 한 때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가능하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국제 무역 관계가 더 이상 경제적 이점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측면도 고려될 것이다.
이는 대외 무역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정치적 목표 달성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중국의 한한령이 그랬고, 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가 그랬고,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이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미국의 바이든이 동맹국을 끌어안기 시작하면서 전선은 점차 정비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세계 무역질서는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국가와 미국.유럽 중심의 자유민주 자본주의 국가 간의 집단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비록 불완전하나마 WTO에 많은 역할을 기대하며 글로벌 자유무역의 추구하던 시대는 어느 덧 사라지고 있다. 냉전시대 공산주의대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무역을 하던 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한 선은 그어지고 있다. 이는 국제분업으로 인한 규모의 경제, 전문화 이익의 부분적 희생을 의미하는 탈세계화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구적 생산성 저하이고, 경제는 후퇴하게 될 것이다.
무역의존도 90-110%를 오가는 세계 최고의 무역국가 한국으로선 단단한 채비를 해야 한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