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린 대구구장 외야석은 이승엽 선수(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56호 홈런볼을 잡기 위해 길다란 잠자리채를 든 관중들로 가득 찼다.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이승엽 선수는 기어코 상대 투수의 공을 받아쳐 비거리 120m짜리 중월 솔로홈런을 날려 아시아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나 담장을 넘은 역사적인 56호 홈런볼은 애석하게도 관중들의 잠자리채를 모두 외면하고 말았다. 홈런볼은 야구단 협력업체 직원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즉시 홈런볼을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억대'의 횡재를 기대했던 관중들은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이승엽의 홈런볼에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가 걸려 있었다. 56호 홈런에 앞서 이승엽 선수의 최연소 300호 홈런볼은 무려 1억2000만원에 팔렸다. 아시아 홈런타이기록인 55호 홈런볼도 그해 12월 TV경매를 통해 1억2500만원에 팔렸다.
홈런볼을 주운 이는 시중가 4∼5000원에 불과한 야구공 하나로 1억원이 넘는 '횡재'를 얻은 것이다. 게다가 명백한 '불로소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도 한 푼 내지 않았다.
당시 이승엽 홈런볼로 얻은 경제적 가치에 대한 과세여부가 관심을 모았었다. 워낙 사회적 관심이 높은(홈런 신기록) 상태였고 또한 그동안 '전례'가 없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주무부처인 재경부는 즉각 법적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검토 끝에 재경부는 '비과세' 결정을 내렸다.
열거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현행 소득세법상 '홈런볼'에 대한 과세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재경부의 설명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주물(주인이 없는 물건) 점유로 소유권을 취득한 기타소득(불로소득)의 경우 과세기준을 취득시점의 가액으로 삼고 있으나 '홈런볼'의 경우 취득시 가액이 겨우 '공 값(4∼5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과세의 의미가 없다는 것.
다만 재경부는 "홈런볼이 100년 후 골동품의 가치를 지니게 되고 서화·골동품 과세제도가 시행된다면(이 제도는 그 해 12월 전면 폐지됐다) 추후 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에 대해서는 (양도세를)과세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 같은 비과세 결정의 배경에는 법적, 이론적 측면에서의 접근 말고도 또 다른 측면의 접근도 이뤄졌다.
2003년 당시 경제상황이 좋지 못해 일반국민들의 어려움이 많았다. 이 와중에 터진 이승엽 선수의 엄청난 홈런 행진은 분명 경제에 지친 국민들의 우울함을 달래주는 '활력소'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세여부 검토과정에서 이 같은 국민적 공감대에 대한 배려가 (대외적으로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감안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승엽 선수의 홈런행진이 국민들에게 가져다 준 '신바람'에 대한 보상의 성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경제적 이득을 가져간 이는 몇 사람에 불과했지만 '심리적 이득'은 전 국민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