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印 '거리두기'에 고립된 푸틴, "우크라 상황 더 심각해질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군으로 여겼던 중국과 인도 정상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받으면서 고립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에서의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면서 강력한 군사 행동을 시사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 인도는 개전 후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산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유엔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우국으로서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NYT는 지난 15∼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이들 두 나라 정상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최근 하르키우주에서 퇴각한 푸틴 대통령은 SCO 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별도로 자리를 마련해 양자 회담을 했다.

이날 러시아의 우방국으로 알려진 중국과 인도 정상들과 연이은 회담을 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힘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 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16일 푸틴 대통령과 회담 초반부터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쟁으로 인한 식량·에너지 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더 가혹하다고 강조하면서 "오늘 우리는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기회를 가질 것"고 덧붙였다.

모디 총리의 발언에 대해 NYT는 우국으로 알려진 인도의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자 러시아와 '거리두기'를 하려는 신호라고 했다. NYT는 이같은 외교적 좌절과 최근 하르키우주에서의 퇴각으로 푸틴 대통령은 개전 후 가장 어려운 순간에 직면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황이 수세에 몰린 데다 같은 편으로 인식해 온 중국과 인도로부터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15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푸틴 대통령과 첫 대면 회담한 시진핑 주석은 전쟁에 관한 '의문과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공개된 모두발언에선 "세계와 시대, 역사의 변환기에 중국은 대국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고, 변란이 교차하는 세계에 안정과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는 지도적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러시아와 협력해 양국의 핵심 이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원을 확대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진 비공개 회담은 분위기가 달랐다.

시 주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푸틴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인정한다'고 언급하며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대화가 오갔다는 점을 인정했다.

중국도 인도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식량난과 에너지난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해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NYT는 15일 시 주석의 이같은 발언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지난 2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어조라고 했다. 당시 두 정상은 “양국의 우정에는 한계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5000자 분량의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NYT는 다소 미지근해진 중국의 지지로 우크라이나 전쟁 7개월째를 맞는 푸틴 대통령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우크라 전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구소련 역사를 연구하는 세르게이 라드첸코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학원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를 서방과의 관계에서 차단시켰으며, 중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돌보는 데 가장 능숙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가 중국으로 향할 통로는 막혀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의 일환으로 시행한 금수조치의 기회를 활용해 러시아산 화석 연료를 중국이 싼값에 수입했다.

중국의 지난 4∼7월 러시아산 원유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늘었고, 이 기간 중국의 러시아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각각 50%, 6% 이상 증가했다. 중국과 러시아 간 광역 송전선을 통한 러시아산 전력 수입도 39% 뛰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알 수 없지만, 서방 전문가들은 그가 더 많은 패배를 당한다면 군사 행동의 강도를 대폭 높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에서 테러를 자행해 보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정말로 자제하며 대응해 왔지만, 당분간만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협상을 끝내버린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원하지 않기에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되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7일 기자회견에서도 최근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을 겨냥한 순항 미사일을 '경고성 공습'으로 칭하면서 더 잔인한 작전의 전조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는 완전한 전력으로 싸우고 있지 않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한 군사 작전 계획이 수정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인도의 우려를 고려한 듯 전쟁의 주된 목표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을 대부분 장악했으나, 최근 우크라이나는 무서운 기세로 반격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과 공방을 거듭하며 전쟁을 길게 끌면 중국과 인도가 결국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번 회의를 통해 확인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칼럼니스트인 막심 유신은 중국의 러시아 지지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게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크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기대감을 키워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