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을 차명계좌에 보관했더라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범죄수익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11일 회사 법인계좌에서 출금한 8여억 원을 차명계좌에 보관하는 등 모두 100억 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D제약 전 대표이사 오모 씨 등에게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범죄수익법) 위반 혐의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업무상 횡령죄가 이뤄져야 비로소 횡령 행위로 생긴 재산을 범죄 수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횡령 범죄로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범죄수익법상 범죄수익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회사 자금을 인출해 차명계좌에 보관한 행위가 법인 자금으로 별도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법영득 의사로 이뤄진 것이라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비자금을 사용할 때 비로소 횡령 행위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변칙 회계 처리로 인출한 회사 자금을 차명계좌에 입금해 관리했다면 이는 횡령 범죄가 성립되기 이전 단계로,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현금을 수표로 교체 발행하거나 차명계좌 사이에서 계좌이체 한 행위도 범죄수익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오씨는 화의 상태인 회사의 대표로 있으면서 리베이트 비용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1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이중 일부를 차명계좌에 보관한 혐의로 2004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