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9월11일 테러조직 알 카에다에 의해 공중 납치된 비행기 두 대가 미국의 심장, 뉴욕에 위치한 WTC를 들이받았고 쌍둥이 건물은 2, 3시간 화염을 뿜어내다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5년이 지난 2006년 9월11일. 미국 전역에서는 희생자 추모식이 거행되는 등 '끔찍했던' 그 날의 참상을 애도하기 위한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같은 날 서울 서초동 한국세무사회관 대강당에서는 생일파티가 열렸습니다.
세무사제도 창설45주년 기념식.
원래 세무사제도 창설기념일은 9월9일. 그러나 올해 9월9일이 토요일이었던 관계로 세무사회는 기념식을 11일로 옮겨 거행했습니다.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성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조촐하지도 않은 기념식이었습니다.
기념식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임 회장의 기념사 그대로) "시장현실은 어렵지만 힘을 합쳐서 잘 헤쳐나가자"였습니다. 몇 가지 난국타개책(세무사 선발인원 축소 등)도 소개됐습니다. 어디까지나 피상적이었지만.
◆"국세청발 폭탄, 세무대리 업계에 투하되다"=기념식이 거행된 11일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국세청발(發) '폭탄'이 세무대리 업계를 강타했습니다.
국세청이 매주 금요일을 소액불복청구사건(심사청구, 과세전적부심사청구, 이의신청)집중처리일로 지정, 1000만원 미만 소액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000만원 미만 소액건 중 금전적 문제로 세무대리인(세무사 등)을 선임하지 못한 사건들이 주대상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발표였습니다.
국세청은 "영세납세자들이 세법지식이 부족함에도 비용부담 때문에 불복청구시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않는 등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억울한 세금을 내는 일이 없도록 영세납세자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전군표 국세청장이 취임하면서 밝힌 '따뜻한 세정' 실천의 일환인 셈이죠.
◆'따뜻한 세정'의 희생동반자는 세무대리인(?)=이 같은 국세청의 발표에 대해 세무대리업계 일각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세청(혹은 정부가)이 세무대리인을 '고사(枯死)'시키려 한다는 것이 요지. 한 꺼풀 벗겨보면 일리 있는 목소리입니다.
현재 세금불복대리 업무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실정입니다.
기업 등 거액 세금불복대리는 특정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등에 의해 사실상 독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세금불복과 관련한)행정소송은 어떻습니까. 세무사들은 소송대리가 불가능합니다. 즉, 변호사들에 의해 조세불복소송 대리가 주도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소액사건(굳이 1000만원 미만 사건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이 군소(群小)세무사들의 '짭짤한 수익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국세청에서 세무대리인이 선임되지 않은 1000만원 미만 사건에 더욱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 처리하겠다는 것을 '핵폭탄'으로 받아들이는 측의 주장은 "앞으로 납세자들이 1000만원 미만 사건에 대해서는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짭짤한 수익원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인 셈. 여기에 더해 인용률마저 높다면? 납세자들이 굳이 세무대리인의 조력을 찾지 않고 국세청이 스스로 뿜어내는 '따뜻함'에만 기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같은 우려를 낳게 한 배경입니다.
어찌 보면 '기우(奇偶)'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무대리인들 없이도 세금불복 업무를 할 수 있고 또 구제 받을 가능성도 높다는 인식이 쌓여간다면, 기우는 곧 현실이 될 것이란 설명입니다.
◆끊임없는 정부발(發) '폭탄'‥세무사회 '위기의식' 경직됐다?=비단 이번 국세청의 발표만이 세무대리업계를 긴장시킨 주범은 아닙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정부발(發) 폭탄이 세무대리업계에 투하된 것이 사실입니다.
비근한 예 몇 개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국세종합상담센터 개소는 세무사들의 수익원 중 하나로 군림해왔던 (유료)세무상담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계기가 됐습니다.
아울러 전자신고 도입. 아직까지 보편화는 덜 되었지만 제도의 취지가 세무조력 없는 간편한 세무신고 체계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세무대리인의 입지를 대폭 좁혀지게 만들게끔 하는 암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있습니다. 최근 국세청이 내놓은 소위 '컨설팅 조사'입니다.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세금추징'보다는 세무회계처리의 적정성을 지도해 주는 '지도조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 세무대리인들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의 세무조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게 세무사업계의 분석입니다.
이 와중에 세무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임향순 회장은 11일 기념식에 참석해 ▲세무사선발인원 축소 ▲회계참여제도 추진 ▲사법보좌인제도 추진 등 어려운 시장현실을 타개할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은 사실상 '고전'에 속하거나 고전에 변형을 가한 것(사법보좌인제도 등)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세무사회가 '울궈먹던' 것을 그대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고 게다가 현실화 가능성도 미지수인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점차 세무대리인들에 대한 시각을 달리 가져가고 있는 정부(위 대책들도 정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입니다)에 대한 대응책, 당장 야금야금 잠식되고 있는 기존 업무영역에 대한 보호대책부터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비젼(vision)도 좋지만 눈 앞에 놓인 당근을 뭉텅이로 빼앗긴 뒤라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납세자를 위한 서비스 질 향상으로 대응해야"=결국 세무사들의 문제는 세무사들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국세청이 과거 세무대리인들에게 맡기던 납세서비스를 자체서비스화 하려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한 세무사는 "결국 국세청과 세무대리인들간 대납세자 서비스 질을 놓고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게될 것"이라며 "세무사들이 납세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지, 그 서비스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등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세무사는 "세무사들 스스로 직업의식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한다"며 "이제는 납세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하는 무한경쟁 시대다. 과거의 시스템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다면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