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10일, 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2002년에 기업들의 접대비로 4조7천억원이 비용 처리되었으며, 이 중 룸살롱과 골프접대비가 39% (1.8조)를 차지했다'고 지적하면서 접대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밝혔다. 물론 이틀 전인 4월8일 세정혁신추진위원회 1차 회의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사업과 관련이 적은 향락성 접대비의 제도개선 논의를 바탕으로 한 의도된 발언이었다.
국세청장이 취임 20일도 되지 않아 접대비에 대한 강력한 혁신의지를 밝히자 말들이 많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룸살롱이나 골프 접대 등의 고액 향락성 사교성 접대비는 모두 앞으로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계는 물론 일부 언론과 정치권 및 공직사회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들이 외부로 내건 반대이유는 경기가 좋지 않은데 소비가 위축되어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라는 것이었지만, 실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장이 커지자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5월1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려운 경제여건과 획일적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해 현행 세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 사용한 업무관련 접대비는 고액 향락성 접대비라도 인정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또 일부 언론에서는 '골프장과 룸살롱 등에서 사용한 고액 향락성 사교성 접대비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비용으로 인정해주지 않도록 한다'는 국세청의 개혁방안이 법인세법 개정권을 쥐고 있는 재경부의 강력한 반대로 백지화되었다고 기사화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사실과 달랐다. 나 역시 무조건 고액 향락성 접대비는 비용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그런 생각보다는 접대비 내역을 확인해 업무와 관련 없는 접대비만을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다만 접대 상대방을 기재하도록 하는 실명제가 시행되면 그런 향락성 고액 접대비는 자연스럽게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접대비실명제 도입 문제가 매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대체로 일반 국민과 시민단체 등은 우호적이었지만 경제계는 노골적으로 반대를 했고,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명분 때문에 내놓고 큰소리로 반대하지는 못했지만 음으로 양으로 제동을 걸었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에서도 사실상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다.
또 하나 내가 내심 걱정했던 것은 접대비실명제가 다음해(2004년) 4월에 치러지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쳐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제기되는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2004년 1월1일 시행을 목표로 다양한 방법으로 접대비실명제 필요성에 대한 국민 홍보를 대폭 강화했다. 아울러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이 혁신이고 따라서 저항이 없는 혁신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는 소신을 갖고 치밀하게 준비해 나갔다.
그렇지만 수많은 저항과 반대 로비가 계속되면서 황야의 발판에 혼자 서있는 것처럼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 최단명 국세청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심으로는 접대비실명제를 관철하지 못하면 스스로 옷을 벗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를 다졌다.
<다음 회에서는 접대비실명제에 대한 노무현대통령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