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단은 우크라이나 곡물이 국내 시장을 휩쓸면서 농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 곡물에 대한 금수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경로가 폐쇄했기 때문에 폴란드를 포함 동부 EU 회원국(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으로 수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갈등이 표면화했다.
여기에 프랑스, 독일, 스페인은 "수출 제한이 EU 역내 시장의 무결성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노력을 훼손하는 행동"이라며 편을 들었고 젬 외즈데미르(Cem Özdemir) 독일 농업부 장관도 "폴란드의 행동으로 이익을 보는 유일한 주체는 세계 곡물 시장에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려는 러시아뿐"이라고 말해 상황을 꼬이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터지자 약 800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곡물 소비가 1300만 톤에서 1400만 톤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결과 잉여 농산물이 4500만 톤을 넘기며 폴란드 전체 농민이 생산하는 곡물 수확량을 웃도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우크라이나는 생산한 대부분 곡물을 수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흑해가 차단되고 중부 및 동부 유럽 국가들까지 수입을 금지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크라이나가 발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달 11일 볼히니아 80주년 행사와 관계가 있다. 1943년 7월 11일 소위 '피비린내 나는 일요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부대는 인종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폴란드 크레시 주민들 5만~6만 명을 학살하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이후 양국은 1942년부터 1947년에 걸친 제2차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3년 이 행사에 참여한 알렉산데리 콰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면전에서 '인종 학살'이라는 말로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공동 대응해 왔던 양국 사이는 폴란드가 곡물 금수 조치를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비치자 우크라이나가 불만을 표하는 수준에서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일 폴란드 대통령 직속 국제정책실장인 마르신 프지다츠(Marcin Przydacz)가 1일 우크라이나 곡물에 대한 추가 금수조치를 언급하면서 "폴란드가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는 사실에 우크라이나는 감사하기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방아쇠를 당겼다.
발언을 접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부국장 안드리 시비가(Andriy Sybiga)는 "사실상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다른 동맹국들의 도움에 매일 감사하고 있다"라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더 많은 것을 챙기려는 것은 배신행위로 양국 관계에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곡물 유입에 대한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마르신 프지다츠 실장도 "폴란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로페즈스카 프라우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성명을 통해 "폴란드의 지원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낭설을 폴란드 사회에 강요하려는 정치인의 사적인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라며 "현실과 무관한 자신의 기회주의적 이익을 위한 게임이며 대통령실 안드리 시비가의 조작"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에 대한 감사함에서 농산물 금수 조치 연장에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안락사에 동의하도록 강요하는 것, 당신이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그 구원자가 구조비를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6일, 분을 이기지 못한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우크라이나 주재 폴란드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폴란드 대사는 "폴란드의 도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배은망덕 주장은 현실과 차이가 있으며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폴란드의 중도 우파 폴란드 2050그룹과 농촌에 기반을 둔 폴란드 인민당(PSL)이 연합 전선을 통해 집권당에 대항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국수주의적 경향을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보여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관계가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