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6연속 동결 결정…'경제지원·금융안정'에 무게

전문가 "韓 경제 매우 안 좋아…기준금리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

"부동산PF·가계부채, 은행권과 금융당국 간 가산금리 협의로 관리 가능"

"통화정책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 재정·금융정책 통해 보완 대응 필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9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금융안정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 4, 5, 7, 8월 기준금리 동결에 이어 여섯 번 연속 동결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대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더욱이 국내 물가상승률이 석 달 만에 3%대를 넘어선 데다 국내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등 국내 여건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으로 한은은 판단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인한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에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중동 전쟁이 아직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 상방압력은 높아질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시 국내 물가의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11일 공개된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는 연준 위원들은 올해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냈다. 하지만 미국의 견조한 경제지표에 연준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9%대를 돌파하며 16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여전한 상황이며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9월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79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업대출도 11조3000억원 증가해 역대 9월 증가액 기준으로 통계속보치(2009년 6월)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이에 금융안정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의 중장기적 견조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단기적 경기변동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8월 경상수지는 48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한은의 연간 전망치 270억달러 흑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이-팔 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 추가 상승으로 인해 경상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올해 국내경제가 고물가·고금리의 부정적인 파급효과 등으로 1.3%(추정)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 겸임교수)은 "물가 불안에 중동 이슈마저 겹치면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은 높아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금통위는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KB증권 임재균 연구원은 "한은은 지난 8월 올해 성장률을 1.4%로 전망했고 이창용 총재는 지난 13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과 큰 차이가 없다고 언급했다"며 "3분기 삼성전자 실적발표 이후 반도체 업황의 바닥론이 힘을 받고 있는 점과 한은의 성장 전망에서 보듯이 경기는 올해 상반기 바닥을 지나고 하반기, 내년으로 갈수록 개선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국내 물가의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이어가기로 판단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를 기록하며 8월 3.4%에 이어 두 달 연속 3%대 상승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90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전년동월대비 하락폭이 크게 축소됐고 농산물가격도 과실을 중심으로 오름폭이 확대된 영향이다.

한은은 지난 5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부터 다시 둔화 흐름을 이어가면서 연말에는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근원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가파른 상승에 따른 기저효과, 수요측 압력 약화 등으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향후 물가 전망경로 상에는 국제유가 및 환율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 총재도 9월 소비자물가가 3.7%를 기록한 것은 한은의 예상보다 더 올라갔다고 언급한 바 있다. 3분기 평균 물가상승률은 3.1%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은의 올해 하반기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0%이다.

임 연구원은 "11~12월 4%에 가까이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은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상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한은도 이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통위는 또한 여전히 높은 부동산PF 부실 우려와 최근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9월중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은 2조4000억원 늘어 전월대비 증가폭이 축소됐지만 주택담보대출은 5조7000억원 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2금융권 주담대 대출은 4000억원 감소했으나 은행권은 6조1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주담대 대출은 9월 증가액 기준으로 통계속보치 작성 이후 두 번째 큰 폭으로 증가했다. 더욱이 은행 기업대출은 11조3000억원 늘며 역대 9월 증가액 기준으로는 통계속보치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임 연구원은 "대출금리가 지난 4분기 고전 이후 반락하고 부동산가격도 바닥을 확인했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주담대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했다"며 "아직까지는 주담대 위주로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금리를 인하할 경우 신용대출도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난 2월부터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PF 문제이다"라며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부동산시장을 냉각시킬 수 있고 감소세에 있는 미분양주택 건수를 다시 증가시킬 수도 있다. 부동산PF로 인해 발생 가능한 금융부실 문제로 인해 금리 자체를 인상하기에는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가계부채의 경우에도 기준금리 인상 시 증가 속도를 둔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차주들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진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은행권과 금융당국의 협의에 의한 가산금리 상향 조정 등을 통해 시중금리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부연했다.

금통위의 결정은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기는 했으나 연준의 추가 인상분이 이미 시장에 반영돼 변동성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 연구원은 "한은이 환율의 수준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한 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 총재는 연준의 추가 한 차례 인상이 환율에 반영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면서 "환율이 시장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총재의 발언은 현재 시장금리에 미국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반영됐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도 "일각에서는 물가 불안 해소, 한미 간 금리 격차 축소 등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상하지 못할 이유 역시 다분하다"며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 여건을 우선 고려해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정, 금융정책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서 대응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당국에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