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고위공무원단제도가 도입돼 시행된 지 넉 달이 지난 현재 민간영역의 참여 저조와 절차의 복잡함으로 인해 국장자리가 한 두 달 비워있는 것은 예삿일로 취급되는 등 제도가 낙제점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장자리 하나 채우는데 2∼3달이 그대로 지나가 버리는 현 추세라면 참여정부 잔여기간 동안 고공단의 20%를 차지하는 개방형직위는 물론, 30% 규모의 공모직 직위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공단제도 시행 한 달만에 외부에 개방해야 할 14곳 중 7곳의 문호를 개방한 국세청의 경우는 특히 그 폐해가 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이 처음으로 임명된 전산정보관리관 자리는 국장 공석 석달이 지난 최근에야 자리를 메꿀 수 있었으며, 중부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지난 7월28일 이후 석 달 넘게 공석상태다.
중부청 세원관리국장은 특히 근로자들의 연말정산과 관련한 원천세 업무는 물론 법인 세무조사대상자 선정, 올해 들어 납세의무자가 크게 늘어난 종합부동산세 과세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막중한 자리여서 장기공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 국장공석 예사…"뭐 이런 제도가…"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시행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석을 유지하는 국장자리가 많다는 것. 또 국장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국장을 새로 뽑는다는 공모가 진행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와 함께 개방·공모형 직위를 공모한 대다수 자리에 대한 재공모가 진행되는 것도 두드러진다.
제도 시행 한 달만에 외부개방대상 국장자리의 50%를 내놓은 국세청의 경우 국세청 인사에 밝다는 전문가들조차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서쪽에서 국장이 나갔는데 동쪽에서 국장을 새로 공모하는가 하면, 이미 국장 준비가 된 간부가 내부에 즐비한데도 재공모가 일쑤다.
이와 관련 국세청 내부에서는 "고급공무원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제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행초기여서 그런지 민간영역에서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간인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세정에 접목하기 위해선 민간영역에서 국세청 국장으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 영입돼야 하는데, 공모를 통해 지원을 한 민간인들은 시쳇말로 '함량미달'이었다는 전언이다.
이에 따라 국세청 사람들은 "세금자체가 국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속성이 있는 만큼, 세법집행을 하는 공무원들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함양하고 있어야 한다"며 "수단에 불과한 고공단 제도의 성공을 위해 민간인을 억지로 국장 자리에 꿰맞춰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세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되 납세자의 마음을 헤아려 공평하게 집행하는 '사람'에 고위공무원단제도라는 '옷'을 맞춰야지, 옷에 사람을 맞춰선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버젓이 국장이 있는데, 웬 공모
중앙인사위원회는 고공단제도의 조기정착을 위해 개방형, 공모형, 자율형 직위의 순서로 국장인사를 단행하도록 방침을 설정, 해당부처에 시달했다.
이 지침에 따라 인사를 단행하고 있는 국세청의 현재 모습은 마치 메뚜기들이 뛰어다니는 모양새다.
부처별 중요성이 인정돼 자율형 직위로 지정된 국장자리가 공석이 돼도 업무공백을 막기 위해 곧바로 채워 넣지 못하고 있으며, 미처 채워넣지도 못한 개방형직위의 국장 중에 뽑아 올려야 하는데 이 마저도 만만치 않은 형국.
국세청에는 현재 공모형 직위인 국세공무원교육원장과 중부청 납세지원국장 및 세원관리국장에 대해 재공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 중에 중부청 납세지원국장과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은 공석이 아닌데도 공모중이다. 당연히 영(令)이 설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곧바로 떠날 국장들에게 부하직원들이 충성을 다 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기 때문.
■ 절차만 투명하면 내부 공무원 충원으로 공석 막아야
전문 행정가들은 조직에 새바람을 넣는 외부전문가 충원과 관련해서는 사무관이나 서기관 등 실무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과장과 계장 등 전문지식을 갖춘 실무진들이 가져오는 결재서류는, 고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확신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
국장이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 실무 과·계장들은 국장을 역으로 가르치는데 하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전문지식을 갖춘 민간인을 국장으로 모시기에는 여건이 따르지 않는다. 그 정도 국장이라면 민간영역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사람인데, 민간의 보수와 공무원 보수 사이의 격차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직에 발을 들이기 만무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외부 민간인이 지원을 않는데, 이들을 억지로 불러올 수 없는 노릇"이라며 "업무중요도가 큰 국장들의 장기 공석을 막기 위해선 선발절차만 투명하다면, 민간영역이 준비가 될 때까지 내부공직자로 충원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