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3.50%로 ‘9연속’ 동결…‘경기지원·금융안정’ 무게

2월 한은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결정

전문가 "금통위원들, 금리 성급하게 내릴 상황 아니라고 판단한 듯"

"韓 선제적 금리인하 시 외국인 자금유출 가능성 우려"

"美 금리인하 시작해야 韓 금리인하 나설 것" 전망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2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가 6월로 미루어지는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축소되면서 국내 경기와 금융안정 지원을 우선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2, 4, 5, 7, 8, 10, 11월과 올해 1월 기준금리 동결에 이어 아홉 번 연속 동결 결정을 이어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견고한 경제, 고용지표와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위원들의 금리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 확인, 기준금리의 인하 기대가 6월 이후로 조정되면서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은 축소됐다. 이에 따라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다소 줄었다.

대내적으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결정되며 건설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모양새다.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지만 증가폭이 축소되면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도 2%대로 내려앉으며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경제는 반도체 수출이 반등하면서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여타 주력 수출품목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과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미국 경기도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상품수지가 크게 개선되며 한은 전망치 300억달러를 상회하는 354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12월 경상수지는 74억1000만달러 흑자로 나타나며 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한은은 지난 7일 '2023년 12월 국제수지(잠정)' 설명회에서 "조사국은 2024년에 490억달러 흑자, 2025년 590억달러 흑자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확대되는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라인 경기 회복세, 상품수지 호조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그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금융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부동산 PF 부실 우려, 가계대출 불안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가계대출 증가세 주춤 등 영향에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축소됐다.

작년 4분기말 가계신용(가계 빚) 잔액은 1886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고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1064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지만 가계신용의 증가폭은 지난해 3분기 17조원 증가에서 작년 4분기 8조원 증가로 증가폭이 크게 축소됐다. 가계대출은 6조5000억원 늘며 전분기 14조4000억원 증가보다 상당폭 줄었다. 주담대도 17조3000억원 증가에서 15조2000억원 증가로 주춤했다.

한은은 지난 20일 '2023년 4/4분기 가계신용(잠정)' 설명회에서 "연간 가계신용은 18조8000억원 증가했는데 연간기준 가계신용 증가폭으로는 2022년과 2003년을 제외하면 통계 작성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4분기 특징을 보면 신용대출,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 등 기타대출 감소세가 지속된 가운데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조치로 분기 중 정책모기지 공급 규모가 전분기보다 줄고 예금은행 일반 주담대 증가폭도 축소됨에 따라 가계신용의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부연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금통위원들은 경기지원과 금융안정이라는 면을 고려했을 때 기준금리를 성급하게 내릴 만큼의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물가안정'이라는 한은의 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를 기록하면서 2%대에 진입에 성공했다. 다만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물가 전망경로 상에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한은은 지난 2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압력 약화,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유가 불확실성이 커진 점, 생활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인 점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물가 흐름을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가 전망경로 상에는 지정학적 정세, 국내외 경기흐름, 비용압력의 영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인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실장은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인 2.00%포인트(p)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준금리 격차는 한국은 그 자리에 있고 미국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금리격차가 벌어졌다. 즉 한은은 소극적으로 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용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우리나라가 먼저 금리인하를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금리 격차를 벌리는 일이 된다"며 "이 경우 경기안정, 금융안정 면에서 일종의 쇼크일 수 있어 외국인 자금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금리인하에 대한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인 금리인하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