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분식회계 고해성사가 잇따르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분식회계 내역을 공시하면 거의 대부분 주가 급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말까지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할 경우 감리를 면제하고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금융감독원 방침에 불만 섞인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분식회계를 공시한 코스닥상장사의 한 소액주주는 "큰 손실을 입은 주주를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용서해주고 말고를 결정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분식회계 공시 후 주가 '급락' 잇따라
현대정보기술은 14일 오후 늦게 공시를 내고 "새 대주주의 기업 실사 과정에서 당좌자산을 그동안 과대 계상해 온 것으로 확인했다"며 "진행률 기준에 따른 엄격한 회계기준을 적용한 결과 지난 2003년부터 작년까지 총 546억원을 부풀려 기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정보기술은 2003년 141억원, 2004년 177억원, 작년 193억원, 올 1~3분기 누적 125억원 등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재무제표를 싹 바꿨다.
당연히 주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일 장 초반 한때 13% 내외 하락하던 현대정보기술은 대주주 호성측의 지분 추가 매입 의지에 낙폭을 크게 줄여 5.17% 하락으로 마감했지만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이 털어내고 난 이후였다.
지난달에는 이건산업이 분식회계를 공시하며 4일과 9일 2거래일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다. 또 지난 9월 15일에는 산양전기가 120억원 규모 분식회계를 고해성사하며 당일 14.89% 밀리는 등 사흘 연속 급락했다.
올초 분식회계를 공시했던 효성, 대륜, 에쎌텍, 베넥스 등도 분식회계 공시에 따른 주가 급락을 피하지 못했다.
주가가 급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잘못된 재무제표를 보고 투자했던만큼 주가가 조정받기 마련인데다 회사에 대한 신뢰마저 깎이기 때문.
◆투자자 외면한 정책, "알아서 소송 걸어라?"
금감원이 '유화책'을 내놓은 이유는 내년 증권 집단소송제의 전면실시를 앞두고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에 개인투자자를 위한 대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현대정보기술의 한 소액주주는 "주가가 급락하면 호성이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했지만 돌려 말하면 저가에 지분을 늘리겠다는 얘기 아니냐"면서 "결국 이번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앉아서 당하고 말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 다른 소액주주는 "전 최대주주인 미라콤아이앤씨에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건데 호성측이 가만히 있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왠지 우리 같은 투자자들만 눈 뜨고 당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금융 감독당국의 제재수위를 낮춘다는 얘기지, 분식회계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 역시 면제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의 반응은 차갑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모여 의견을 통일하고 법적 대응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
실제로 지난 7월 분식회계로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 26명에게 총 7억2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 받은 터보테크는 항소를 제기하는 등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한 투자자는 "생업에 종사하기 바쁜 소액주주들에게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으라'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정책이 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