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 진출, 갈수록 탄력 받을 듯
그렇다면 남녀지위의 동등화 또는 역전현상 속에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단정은 아직 성급하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은 '과거와 비교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해야 더 맞을 정도로 남성의 아성과 기득권은 여전히 굳건하다. 유리 천장이 파열음을 낸다고 해서 붕괴를 말하기에는 이르며, 분야에 따라 그 천장은 강하게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작년 8월 초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신문은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 때문에 직장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한국상황을 전하면서 '콘트리트 천장(concrete cei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성들이 간부 단계인 '유리 천장'까지는 용케 뚫지만 그 위의 '콘크리트 천장'에서 막혀버린다는 뜻이다.
여성들이 특히 기업체에서 임원에 오른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노동부에 따르면, 1천 명 이상을 고용하는 546개 사기업과 정부부처 및 공기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임원진 비율은 3.3%에 그쳤다. 이 가운데 320개 사기업과 95개 공기업은 사장과 최고경영자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삼성그룹의 경우 전체 간부 중 25%가 여성이지만 1천300명의 임원 중 여성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신문이 1월 29일자로 보도한 30대 그룹 신임임원을 보면 전체 621명 가운데 여성은 단 6명에 불과했다. '콘크리트 천장'이라는 말이 전혀 무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기업분야에서 여성이 저조한 실적을 보이기는 외국도 비슷하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카탈리스트가 지난 22일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의 기업활동이 크게 늘고 있으나 '유리 천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중역비율도 지난해 현재 15.6%로 전년도의 16.4%에 비해 오히려 약간 떨어질 정도였고, 최고경영자 비율도 6.7%로 전년보다 0.3% 오르는 미미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게다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중역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무려 47년이 소요돼 여성이 불리한 여건에서 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유리 천장을 뚫기까지 급료 등의 불평등을 타파해야 하지만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추가로 져야 한다. 일터에서 남성보다 몸과 마음의 애로를 겪어야 하는 여성은 가사노동에서도 남성보다 훨씬 많은 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중 부담'의 저자 알리 혹스차일드는 "여성들이 일터에서 그 나름의 권리를 확보했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가 인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일평균 3시간, 남성은 일평균 17분 동안 가사 노동을 하며, 하루 중 완전히 아이만 돌보며 지내는 시간은 여성이 50분, 남성이 12분이었다. 다시 말해 여성은 남성보다 하루를 두 배 이상 힘들게 살면서 일터에서나 집에서 쉴새없이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많은 여성들이 유리 천장을 뚫는 데 성공하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보통의 여성'들은 경제활동 참가와 처우, 승진 등에서 남성에 비해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분석자료에 따르면, 여성 대졸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3.1%로 남성(89.4%)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는 여성들의 경우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접어들면서 육아, 출산의 부담으로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대학까지는 그런대로 균형을 이루던 남녀관계가 사회진출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내놓은 '2006년 사회통계'에도 2004년 현재 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남성의 60.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남녀 격차 해소가 여전한 과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역할 증대와 지위 향상이 외형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향상돼야 한다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 예컨대, 여군장성 배출의 경우 현재 한 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 명 모두가 간호병과로 그동안 전투병과에선 나오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다양한 목소리를 여군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병과 순서를 바꿔가며 임명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힌다.
교사의 경우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2006년 통계로 볼 때 초등학교 교사의 여성 비율이 70%선을 넘어 '여초' 현상 우려까지 낳고 있으나 압도적 평교사 숫자에 비해 교장(8.7%)과 교감(14.6%)의 비율은 각각 10% 안팎이어서 '남성의 벽'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유엔개발계획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여성권한척도(GEM)'에 따르면, 한국은 75개 평가대상국 중 53위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리는 국위에 견주어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해마다 단계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갈수록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진출 분야가 더욱 다양해지고 직급도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사의 경우 전체 신입사원의 절반 가량을 여성이 차지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물론 요리, 미용 등 여성 고유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분야에 남성이 진출해 남녀 구분없이 직업선택의 크로스오버 현상이 보편화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직종과 중상위직을 놓고 보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된 가운데 치열한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한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상징적 쟁탈전이 뜨겁게 전개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힐러리 상원의원이 같은 민주당 소속의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과 후보를 놓고 한 치 양보 없이 격전 중인데,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하원의장과 더불어 여성천하를 구가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주자로 뛰고 있는 가운데 한명숙 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어떤 행보를 보이며 남성 아성에 도전장을 낼지 주목된다. 프랑스의 루아얄 후보도 지지도에서 한때 밀리는 듯 했으나 선두를 놓고 또다시 치열한 접전을 치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