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11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영 안팎의 실천적 고민과 자신의 과거 군대시절 일화 등 주변 이야기를 편안하게 쏟아냈다. 덕분에 간담회장은 내내 웃음바다가 됐다.
이 회장은 2004년 중국 출장길에 가진 간담회에 이어 3년만에 마련한 이날 자리에서 먼저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내가 잘했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고는 "인사는 원래 사람 인(人)에 일 사(事)인데, 내가 보기에는 사람 인에 죽일 사(死)로 결국 인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인사를 하면서 고민이 깊다는 뜻이었다. 그는 "나야 사람을 퇴직시키고 쓰고 하는 것이지만, 인사 대상이 되는 분들은 훌륭한 가장에서 갑자기 낙오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기에 인사자료를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편하자고 인사를 하는 것이지만, 작년에는 나부터 불편한 인사를 해보자고 했다"면서 "그렇게 했더니 회사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잘된 인사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이런 언급 직후 그는 배석한 배영호 ㈜코오롱 사장을 소개하면서 "화투 뒷장이 잘 붙는 분"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그를 그렇게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이런 부류가 있는 것'임을 설명하려는 투였다.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남수 부사장을 소개하면서는 "화투 뒷장이 안붙으면 그 뒷장을 바꾸는 분"이라고 했다. 설명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은유였다.
"코오롱 기업문화는 잘 모르겠다. 무엇인지 소개해달라"는 물음에는 "아버님 세대에는 '인정과 의리'였다. 뿌리가 깊다. 그런데...인사때도 인정과 의리?"라며 잠시 포즈를 취해 또한번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인정과 의리라는 좋은 바탕 위에서 'rich & famous'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 구성원 모두가 돈 많이 벌고 명예도 갖자는 이야기다.
그는 "네트워크가 모든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편한 사람만 만나지 말라'는 후배 조언에 게으름을 털고 몇해전부터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대학 동문인 최태원 SK회장 사례를 들어 눈길을 끌었다. 전날 방한중인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SKT를 방문한 것을 두고 "최 회장이 발로 뛰어 만들어낸 결과 아니냐"며 "저도 더 열심히 뛰어다닐 생각"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리더십을 자평하면"이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나는 리더십이 별로 없어요"라고 손사래를 친 뒤 잠시 생각을 다듬고는 "카리스마로 이끌기 보다는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웃음은 군대시절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뤘다. 그는 비즈니스 문답이 오가면서 다소 딱딱해질 듯한 분위기에 이르자 화제를 돌려 "5사단 수색대 군복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세상에 안되는 것이 없구나'하는 것이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군시절 말년에 주방장을 했는데, 동료들이 '이 병장이 만드는 음식은 왜 그렇게 맛있어'라고들 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비법이 뭐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왔고, 그는 기다렸다는듯 "미원이죠, 미원! 밥에도 뿌리고 국에도 뿌리고...그러니 맛이 좋을 수 밖에 없잖습니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신혼초기 김장김치, 물김치, 백김치 등 김치들을 손수 담가먹었다고 소개한 뒤 또다시 "왜 초기에만 그랬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김치를 담글 때 털옷을 입었는데, 나중에 가족들이 김치에서 털이 나와 이빨에 다 끼었다"고 불평한 뒤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답을 돌려줬다.
그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2세 후계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고등학교때 다 물려받았는데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내 철학은 자기들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본인이 원한다면 기회를 줄 수는 있으나 권고하고 싶지는 않고, 아직 그런 생각(후계 구도)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코오롱 정리해고자 37명의 장기투쟁과 관련해 "이들을 끌어안을 뜻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그분들의 피땀으로 회사가 발전한 것은 맞고, 개인적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러면 과거 회사가 어려웠을 때 퇴직하신 다른 많은 분들과의 형평은 어떻게 되느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며 원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