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탄핵소추되고, 최초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한나라당에 대한 잇단 비판적 발언에 대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또다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불법이라며 선거법 위반이란다. 이에 청와대는 ‘앞으로는 일일이 선관위에 물어보고 말을 하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더니 드디어는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계기로 또 정치권이 시끄럽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탄핵소추 당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고, 이번 헌법소원을 계기로 또다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억울하다고 하면서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자유를 누리며, 그들의 지지표를 모으는데 대통령은 그들을 비판할 자유가 없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시키며 대통령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후진적 제도이다”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나라는 없다
대통령의 볼멘소리는 기본적으로 옳은 말이다. 세상 어느 나라에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시키고, 이를 빌미로 선거법 위반 운운하고, 탄핵까지 하는 예가 있을까? 대통령이 그 직위를 이용하여 불법 관권, 금권 선거를 사주하였다면 모를까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소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통령제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지지유세를 하고 다니고 있고, 의원내각제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 역시 주지사 선거에서 기민당의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것 역시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의 입을 막는 현재의 선거법은 문제가 있고 억울해하는 대통령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현행 선거법이 입을 막는 대상이 대통령뿐일까?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억울한 것이 비단 대통령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4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탄핵소추되어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뻔했지만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의 같은 이유로, 아니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보다 훨씬 황당한 이유로 탄핵보다 더한 해직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2004년 보수 의회의 ‘의회 쿠데타’로 불리며 대통령을 유폐시킨 그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수만의 촛불과 함께 탄핵반대 시국선언을 발표한 수많은 교사들이 있었다. 당시 전교조 본부와 전국 16개 시도 지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고, 보수정치를 끝장내야 한다는 이른바 ‘탄핵반대 교사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를 빌미삼아 전교조의 위원장과 부의원장들은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면서 선거법 위반으로 해직을 당해야 했다. 성명서를 발표하였다고 해직되는 교사들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06년 서울 동일여고에서는 3명의 교사들이 15억에 이르는 학교비리를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의 괘씸죄, 그리고 특정 정당에 후원회비를 내었다는 이유로 똑같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해직을 당했고, 그 중 한 명은 최근 6월 2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공무원도 특정 정당에 가입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되었고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인정하여 결국 공무원 신분을 박탈당하였다. 정당에 후원금을 내었다고 해직되는 교사가 있는 나라도 대한민국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권 박탈은 몰랐을까?
대통령은 정당에라도 가입하고, 후원금이라도 내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교사나 공무원은 수업이나 학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원금을 내는 것까지 해직의 사유가 된다.
과연 탄핵을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이 교직을 떠나야하는 사유인가? 과연 특정 정당에 개인적인 후원금을 내는 것이 해직을 당해야 하는 사유가 되는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사와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부터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는 나라 역시 거의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성명서와 입장 발표마저 금지하는 한나라당의 억지 주장
연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 검찰 고발 운운하는 한나라당은 지난 5월 의원 127명의 연명으로 교사 개인뿐 아니라 교원노조가 성명서와 입장발표까지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선거기간에는 촛불집회도 금지시키는 황당한 집시법을 만든다고 하던 한나라당만이 할 수 있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정녕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선관위의 결정과 한나라당의 정치공세가 불만이라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정략적 의도가 아닌 진심이라면 똑같이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의 분노와 고집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지금껏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여정부는 교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 탄압하거나, 적어도 침묵했다.
종교에서처럼 정치에서도 개인과 공인의 신분은 구분되어야
우리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교육기본법은 학교와 교사의 종교적 중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이런 교육의 종교적 중립성을 이유로 교사가 개인적으로 하는 종교 활동을 금지시키지는 않는다. 수업이나 교육을 통하여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것만 아니라면 종교를 가지는 것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일과 후에 개인적으로 하는 종교 활동은 얼마든지 보장된다. 이는 개인 종교인으로서의 교사와 수업을 담당하는 공인으로서의 교사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헌법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어 국민 누구나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가질 수 있으며, 정치적 신념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수업을 하는 공인인 교사로서 교사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수업 시간에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금지할 수 있지만, 국민 한 사람이라는 개인으로서 학교를 떠나 수업 이후에 하는 정치활동까지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천부인권인 정치적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종교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적지위와 공적인 지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직위를 이용하여 관권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처럼, 교사가 공적인 직위와 수업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금지될 수 있지만, 국민 개개인으로서 수업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하는 것도 똑같이 보장되어야 한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국제적 망신
5.16 군사 쿠데타 이후 50년 가까이 교사와 공무원은 정치적 자유를 부정당해 왔다. 인간은 그 성격상 정치적 동물(호모 폴리티쿠스)이다. 이런 면에서 대통령과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정치인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 의무 강요가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전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고 과도하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짜 세계적 기준(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정치 선진화이고, 국민의 천부인권인 정치적 자유의 보장이다.
이런 면에서 탄핵 반대 시국 선언을 발표하였다는 이유로 해직된 전교조 전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정당에 후원금을 내고 사학의 내부비리를 고발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된 동일여고의 조연희 교사는 반드시 복직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원노조와 교사가 성명서를 포함하여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도록 하는 한나라당의 교원노조법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되고, 나아가 대통령뿐 아니라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현행 선거법과 공무원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