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위축되고 물가하락으로 인해 내수가 진작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이론이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경제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무색케 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하락으로 채산성이 나빠진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치고 있으나 주가는 급등하고 수출은 오히려 두자릿수의 증가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환율하락은 물가를 낮춰 내수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일반론이지만 최근의 환율하락은 국내소비 진작보다는 오히려 경제주체들의 해외소비를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부추기고 있다.
◇내수보다 해외소비 부추기는 환율하락=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가계의 해외소비 지출액은 4조6천308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민간소비 지출 증가율이 4.1%인 점을 감안하면 해외소비 지출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른 편이다. 가계의 해외소비 지출은 주로 해외 여행 경비와 유학 연수비, 의료비 등으로 빠져나간다.
1분기중 신용카드 해외 사용금액은 14억500만달러(약 1조3천500억원)로 작년 동기에 비해 34.3%나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간소비 지출 증가율은 2004년 -0.4%에서 2005년 3.6%의 증가로 돌아섰고 지난해 증가율은 4.2%였다.
이에 비해 가계의 해외소비 지출 증가율은 2004년 19.9%, 2005년 22.5%, 2006년 17.5% 등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국내물가가 낮아져 가계의 입장에서는 소비를 확대할 여지가 커지지만 한편으로는 해외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원화의 해외구매력도 커진다.
결과는 해외소비의 압승이었다.
올해 1-5월 해외여행경비와 유학.연수비로 해외에서 쓴 돈은 82억6천만달러(7조6천억원 상당)로 작년 동기에 비해 20%나 늘었다.
◇환율하락에도 지칠줄 모르는 수출..증시도 활황=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6월 수출은 323억9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9% 증가하며 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수입 증가율은 9.3%에 그쳤다.
이에 따라 6월 무역수지 흑자는 39억4천600만 달러로, 51개월 연속 흑자를 내며 역시 월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반기 수출증가율은 14.7%로 지난해 상반기의 증가율(13.8%)을 추월했다.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직전수준에 근접하고 있음에도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것은 수출 구조의 변화와 세계 경기여건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력수출품들이 환율변동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품질경쟁 단계에 접어든데다 수출지역이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중소 수출업체들은 채산성이 한계에 달했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한은의 1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매출액 세전순이익률은 7.9%로 작년 1분기보다 0.8%포인트 하락했다.
이처럼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수익성이 낮아지고 주가가 하락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증시는 연일 달아오르고 있다.
◇환율하락이 설비투자.고용 활성화시킬까= 환율하락은 자본재 수입가격을 낮춰 설비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고용을 창출, 결국 내수를 진작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 이론이다.
최근 자본재 수입이 늘면서 설비투자의 확대조짐이 보이지만 고용창출 확대와 내수진작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설비투자 회복을 보여주는 지표인 자본재 수입 증가율은 지난해 상반기 11.9%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6.3%로 올라갔다.
두자릿수의 증가율이 계속되지만 반도체 등 고용창출 효과가 저하된 IT(정보기술) 산업쪽에 설비투자가 몰리다보면 내수진작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설비투자가 주로 IT중심의 수출산업에 집중되면서 수출의 고용창출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은의 `2003년 산업연관표'에 의하면 수출액 10억원당 취업자 유발효과는 1995년 26.2명에서 2000년 16.6명으로 떨어진데 이어 2003년에는 12.7명으로 낮아졌다.
환율하락에 따른 설비투자 확대가 내수의 활황으로 이어지기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환율-정책금리 상관관계도 실종= 환율이 하락할 때 금리를 올리면 환율하락을 더욱 부추긴다는 것이 상식이다.
환율은 자국통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금리, 즉 돈의 가격이 오르면 자국통화의 가치도 상승해 환율하락 압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통화당국은 정책금리 인상을 준비중이다. 최근 몇년간 정책금리 인상으로 환율하락이 초래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통화당국의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