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분실한 신분증을 이용해 계좌를 개설하는 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은행 부주의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면 은행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01년 그 누군가는 박某씨가 분실한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계좌를 개설한 뒤, 그가 미리 알고 있는 김某씨의 계좌번호와 보안카드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는 수법으로 2500만원을 박씨의 계좌로 옮겨서 현금으로 빼내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해당 은행이 신분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계좌를 개설했기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은행에게 70%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5일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박씨 명의의 계좌는 성명불상자가 불법으로 인출한 금액을 일시 입금, 보관하는데 이용된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박씨 명의의 계좌로 인해 원고 명의의 예금계좌에 대한 접근이나 인출이 가능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금융기관이 본인 확인절차 등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 줬다는 것만으로 그 계좌를 통해 입출금된 금액 상당에 대해 언제나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결했다.
금융기관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과 그를 통해 개설된 계좌를 이용한 범죄와 손해발생 사이의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어야만 손해배상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
재판부는 "이 같은 유형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금융기관에 부담시킨다면 불특정 다수인이 자신의 책임 하에 행해져야 할 거래를 잘못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재산권 침해행위 등의 손해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금융기관에 책임을 추궁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