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이나 주고 통장 달라고 해라 이놈아".."불이익 줘도 공개 못하겠더라"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일정직위 이상의 공무원들에게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직계존비속이 소유한 재산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다수 정부부처에서 가족의 재산공개를 꺼려 '재산고지 거부'를 하는 공무원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행자위 소속 대통합민주신당 윤호중 의원에 따르면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재산등록의무자 9명 전원이 가족의 재산공개에 대한 고지거부를 했으며, 가장 청렴해야 할 국가청렴위원회는 공개의무자 149명의 77%인 119명이 가족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또 감사원의 경우도 공개대상 826명 중 564명(68.28%), 대검찰청이 3006명(67%), 국세청 6548명(65%), 관세청 1603명(58.53%), 건설교통부 548명(57.26%), 외교통상부 466명(51.95%) 등이 각각 고지거부를 통해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공직사회 안에서 이들이 재산공개를 거부하기까지의 갖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공개대상 공무원 절반 이상이 '고지거부'를 하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가 제도의 취지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지적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공직자 등록재산은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직계 존비속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통장 등의 동산. 동산중 예금과 채권은 각각 1000만원 이상인 경우만 등록대상이 되며 보석은 500만원 이상이 대상이다. 재산공개대상 공직자는 매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변경된 내용을 1월중에 신고해야 한다.
왜 공직자들이 가족의 재산을 속시원히 공개하지 못하는지 조세일보가 그 몇가지 사례를 알아봤다.
■ 사례1: 상속재산을 미리 파악?…부모의 오해만 불러온 A공무원
올해 처음 재산공개 대상이 된 某부처의 A씨는 지난 1월 재산공개를 위해 부모님께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통장 등을 숨기지 말고 모두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가 호되게 야단만 맞았다. 그리고 그 이후 아직까지 부모의 곁에 얼씬도 못하고 있다.
A씨의 부모님은 '재산목록이 왜 필요한 것인지' 묻기 보다 "부모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벌써 상속재산을 노린다"는 오해부터 했고, A씨가 미처 설명도 하기 전에 밖으로 내쳐졌다. A씨는 결국 올해 부모님의 재산을 '고지거부'로 공개하지 않았다.
■ 사례2: "설날 손주들 세뱃돈 주려던 것"…부모님 부둥켜 안고 통곡한 B씨
某부처에 근무하는 B씨는 올해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모시는 부모와 자녀 그리고 아내의 보험까지 모두 확인해서 재산공개를 했다고 믿었는데, 감찰실에서 '부모님의 예금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다. 금액이 컸더라면 자칫 경고로 이어질 뻔했다.
B씨에 따르면 감찰실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날 그는 귀가 즉시 부모님부터 닦달을 했다. "아들 앞길 망치려 그러느냐. 가지고 있는 통장 다 달라고 했는데, 왜 숨겼느냐"고 그는 부모를 몰아붙였다.
끝까지 "숨겨 둔 통장이 없다"고 발뺌하던 부모님은 그제야 손때에 찌들은 통장 하나를 아들 앞에 내놨다. 평소 많은 용돈을 주지 못했는데, 부모님이 설날 손주녀석들 세뱃돈 주고, 그래도 남으면 대학등록금이라도 보태주려고 몰래몰래 모아오던 통장.
왈칵 눈물이 쏟아진 B씨는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도, 아직까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B씨는 "내년 재산등록 때는 누가 때려죽여도 부모님 재산공개를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 사례3: "용돈이나 주고 통장 달라고 해라 이놈아"…"어이구.. 망신살!!"
某부처에 근무하는 C씨는 작년부터 재산공개 대상이 됐다. 자신을 포함한 아내의 재산목록을 확인한 그는 이어 부모님께도 "숨겨둔 통장 없이 모든 예금내역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말썽만 빚었다.
"나도 용돈으로 예금이라도 해보고 싶다. 네가 예금할 만한 용돈을 줬느냐"며 때는 이때다 싶은 벼락같은 부모님 호통이 이어졌기 때문. 이후 C씨는 부모님 용돈을 올려줬다고 한다.
■ 사례4: "감찰 주의쯤이야. 이게 웬 횡재냐"
반면 재산공개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공직자들도 많다. 지난해 장인상을 당했던 D씨는 재산공개 과정에서 미처 챙기지 못했다가, 나중에 감찰의 주의를 받고 서야 몰랐던 재산을 찾게 된 케이스.
D씨는 재산등록 검증과정에서 아내 명의로 상속된 된 땅이 발견됐다는 감찰의 '부정신고' 주의를 받고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밖에 재산등록 검증에서 휴면예금인 줄 알았는데 수십만원의 예금이 남겨져 있었던 케이스, 예전에 사뒀던 기억에도 없는 주식이 발견되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공직자 절반이 가족재산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 공직사회에선 "가족의 사적인 재산까지 다 공개하라는 것은 공무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라며 "자녀는 몰라도 어차피 상속될 부모재산까지 공개는 심하다"는 주장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