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률 권한 갖고, 감독당국은 '한국은행'처럼
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부처별 통폐합에 대한 각계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통합 등 금융감독 당국의 조직개편 문제도 다뤄질지 주목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융감독당국의 조직개편방안은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 금감원을 합쳐 일본의 금융청을 만든다거나, 영국의 금융감독청(FSA)처럼 공적 민간조직인 통합금융감독원을 설립한다거나,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합쳐 정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를 만들고 산하에 금감원을 둔다는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조직개편은 그만큼 오랫동안 거론돼 왔고, 이에 따라 이같은 방안들 역시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근거와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개편 열쇠를 쥐고 있는 인수위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1차 업무보고를 하는 13일 현재까지 "아직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어떤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며 발표를 늦추고 있어 관계당국의 공직자들은 노심초사하며 인수위의 입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형국.
일단 금융감독조직의 개편은 ▲재경부의 금융정책국이 금감위로 합쳐지고, 금감원이 유지되는 방안 ▲금감위와 금감원 정부조직으로 통합되는 방안 ▲금감원과 금감위가 공적민간조직으로 통합되는 방안 등 크게 3가지로 압축되는데 첫째로 재경부의 금융정책국이 금감위로 합쳐져 금감원과 투톱으로 가는 체제는 기존의 금감위·금감원으로 나눠져 있어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간다는 단점이 있다.
또 금감위와 금감원이 정부조직 또는 민간조직으로 통합되는 안은 전자의 경우 금감원의 반발과 함께 중립성의 문제가, 후자의 경우에는 민간조직이 책임 있는 감독 행정을 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긍정적인 의견을 얻고 있는 것은 공공성을 담보로 한 '공적 민간기구'로의 통합이다. 즉 현재의 '한국은행'을 생각하면 된다.
□ 금융감독 업무는 세 조직에 분산= 금감위와 금감원의 통합 문제는 지난 1999년 금감위와 금감원이 설립됐던 당시부터 논란거리였다. 금융감독 기능이 법률과 정책, 감독 등의 내용별로 재경부 금융정책국, 금감위, 금감원 세 조직으로 분산돼 효율성 문제가 제기돼왔기 때문.
재경부 금융정책국은 금융정책 입안 및 금융관련 법령의 제정, 개정권을 금감위는 감독정책 수립 및 각종 인허가권을, 금감원은 감독 및 검사권을 갖고 있어 감독기능이 분산돼 있다.
특히 금감위와 금감원은 여의도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같은 수장(김용덕 위원장 및 원장)을 두고 있지만, 금감위는 정부조직인 반면,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된 민간조직으로 구성돼 있어 반민반관의 조직이다.
이렇게 기능이 분산되다보니 2003년 카드대란이나 2006년 외환은행의 BIS비율 부실 감독 의혹 등의 문제가 빚어졌을 때도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감독 조직의 개편 논란이 제기돼왔다.
□ 불이 났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다= 현 감독 체제의 문제점은 지난 2003년, 2004년에 빚어진 카드회사의 유동성 대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재경부는 감독당국의 감독을, 금감위는 재경부의 법과 제도를 탓으로 돌리는데 급급했다.
금융관련 법률 제·개정 권한과 감독규정 및 인·허가권한이 분리돼 법이 현실을 적기에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문제가 근원이었다.
한 전문가는 "2001년 금감위가 카드사의 내부건전성에 문제가 있어 카드사의 부대업무비율 상한 등에 관해 재경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적이 있다"며 "그런데 재경부가 1년 뒤인 2002년 5월 정도에 시행령을 개정해 1년 동안 (카드사 부실이) 더 심해졌다"고 밝혔다.
또한 감독정책 권한을 가진 금감위와 실질적인 감독을 하고 있는 금감원, 두 조직의 성격차이도 카드대란이나 부실감독의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예를 들어 증권회사를 설립하고자 할 경우 설립인가는 금감위에서 받아야 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감독은 금감원에서 받아야 한다. 감독의 중복이다.
때문에 카드사태가 터지자 당시 정부혁신위원회는 금융감독당국을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기구화와 한국은행과 유사한 민간기구화를 놓고 많은 논의를 했지만, 재경부의 법률 제·개정권을 금감위에 넘기거나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하는 등의 큰 흐름에는 손도 데지 못한 채 재경부의 법률시행령 일부를 금감위에 넘기는 단순 봉합책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 감독당국…'한국은행'처럼, 재경부…법률제정권 유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안은 재경부의 법률 제개정권은 유지하되, 감독당국을 현재의 한국은행처럼 '공적 민간기구'화 시키는 안이다.
한국은행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정부조직은 아니지만, 통화를 발행하는 등의 공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가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이 돼 조화를 이루면서도 중립적인 조직을 유지하자는 것.
이필상 고려대 교수(민간금융위원회 위원장)는 "공적 민간기구는 지금의 한국은행을 보면 된다"며 "정부의 관여, 정치적인 것에서 벗어나 정부기관에서 법률을 관할하고, 공적민간기구가 실질업무를 담당하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금감위는 원래 최소한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이지만, 파견 인력 등이 많아 150명 정도로 조직이 비대하다"며 "두 기관이 공적민간기구로 합치게 되면 중복되는 기능을 축소해 조직과 인원을 줄이고, 금감위 공무원은 다른 부서로 옮겨 일을 하게 되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금감원은 감독을 받고 있는 금융사가 일정 액수의 분담금을 내 운영되고 있다. 금감위와 금감원의 중복 업무를 줄이다보면, 두 기관이 합쳐져도 조직이 비대해지지 않기 때문에 분담금이 늘어날 가능성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경제정의실천연합 관계자도 "공공성을 가진 공적민간기구로 통합해야 한다"며 "현재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으로 역할 분담이 돼 있어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고 조직이 독립성이나 전문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분을 막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해서 유지하되 책임감을 주기 위해 금감원장(금감위와 금감원 민간통합기구)을 인사청문회하는 방식으로 임명해 책임성을 주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률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조직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하게 되면) 당연히 민간조직으로 해야 한다"며 "선진국에서는 민간 또는 정부에서 금융감독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부에서 감독을 하는데 법률까지 관장하는 나라는 못 봤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금융관련 법률 제·개정권이 재경부에 있어 현재 금감위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금감위가 법률 제정권을 가져도 공무원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똑같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재경부의 법률 권한을 감독당국 통합조직에 넘긴다는 것에 대해 "(공무원 조직의) 투명성에 손을 데야 하는데 단순히 권한을 줬다 뺐다하는 식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