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충청권 약진…전산직 첫 서장임명 '실험적 인사'
중부지방국세청이 조사1국장에서 3국장까지 모두 결원인 상태에서 버텨오는 등 일부 파행으로 운영되어온 국세청 조직이 10일 67명에 달하는 국·과장급 승진 및 전보발령을 통해 제대로 된 진용을 갖췄다.
아직 핵심보직인 국세청 본청 조사국장과 법무심사국장 자리가 직무대리로 운영돼 완결된 진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사국과 법무심사국에 11일 임명될 과장들이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자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한상률 국세청장은 이날 인사에서 국세청을 운영할 때 청장의 눈과 귀, 그리고 왼팔과 오른팔의 역할을 할 ▲감사담당관 ▲감찰담당관 ▲조사1과장 ▲세원정보과장 ▲소비세과장과 법인세과장 등 주요보직을 모두 교체했다.
10일 인사의 특징은 비교적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을 지키며 ▲일반승진 출신 중간간부들의 대거 중용 ▲영남과 충청권 출신의 약진 ▲전산직 간부의 실험적 인사로 요약된다.
■ 세정운영 핵심라인 모두 교체
국세청장이 국세청을 자신이 뜻한 방향대로 운영하기 위해선 하급관서들이 청장의 뜻에 맞춰 업무를 하는지, 도덕적 해이나 비리로 직원들이 얼룩지지 않는지 항상 지켜봐야 하는 것은 필수. 특히 일사불란함을 자랑으로 하는 국세청은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뜻을 잘 헤아려 시의성있는 조치를 중간간부들이 잘 해내야 한다. 한 청장은 10일 국세청에서 꼼꼼하고 치밀한 업무스타일의 권기룡 과장과 정환만 과장을 감사담당관과 감찰담당관에 각각 앉혔다.
또 전국 세무서에서 수집되는 각종 정보를 총괄하며 수시로 청장의 귀와 눈의 역할을 할 세원정보과장엔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에서 관련 일을 해왔던 서대원 과장을 임명했다.
아울러 국세청에서 최고의 조사통으로 평가되는 김종순 과장을 기업 심리분석을 통해 시의적절하게 조사여부를 결정하는 곳인 조사1과장에, 이미 시스템을 통한 관리가 가능해진 법인세과장엔 전산과 통계 그리고 혁신일을 봐왔던 나동균 과장에게 맡겼다.
■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조사·법무심사국 과장 강화
법무심사국장 직무대리를 국 선임인 법무과장이 아닌 이종호 법규과장을 앉혔을 때 법무심사국 과장라인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건 이미 예고됐던 일. 한 청장은 이날 이종호 법규과장을 국 선임과장으로 올리고, 그 자리에 양병수 과장을 임명했다.
행정고시 35회 출신인 양 과장은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과세쟁점 등 법규일을 해왔기 때문에 법규업무에는 적임이라는 평가다.
또 조사1과장에 임명된 김종순 과장은 당장 조사국장 자리에 앉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오래도록 조사업무를 깔끔하게 소화해왔던 국세청 최고의 '조사통'이다. 특히 김 과장은 김갑순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친형이어서 이 집안엔 이번에 겹경사를 맞았다.
조사국과 법무심사국에 단행된 이번 인사는 국장을 장기간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더라도 업무공백을 없게 하려는 한 청장의 의지가 투영됐다.
■ 일반승진 출신 중간간부들의 대거 중용
이번 18명의 국세청 본청 국·과장 인사에서 수평이동을 제외하고 국세청 본청 입성에 성공한 중간간부는 모두 12명. 한 청장은 이들 12명 중 무려 9명을 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말단에서 시작해 승진으로 올라온 간부로 채웠다. 일반승진 출신 간부를 중용한 셈.
김봉래 통계기획팀장, 박수영 정보개발2담당관, 정이종 징세과장, 김영기 납세자보호과장, 강정무 심사1과장, 신동복 심사2과장, 김종순 조사1과장, 권기영 소득지원과장, 차기선 교육원운영지원과장이 그 주인공.
기존 본청에 남았던 김용재 운영지원과장(총무과장), 정극채 정보개발1담당관, 안동범 특별감찰팀장, 정환만 감찰과장, 권기룡 감사과장, 이승호 원천과장, 서윤식 부가세과장, 서현수 조사기획과장도 일반승진 출신이다.
또 신웅식 재산과장, 이병렬 종부세과장, 박인목 조사2과장, 이운창 소득관리1과장, 황용희 소득관리2과장 등까지 감안하면 이번 인사로 국세청 본청 과장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일반승진 출신으로 채워진 셈.
인사적체가 심한 국세청 현실에선 행시 출신보다 일반승진 출신의 승진경쟁률은 훨씬 치열하다. 업무성과를 중시하겠다는 한 청장의 의지가 읽히는 부분이다.
■ 영남과 충청권 출신 간부의 약진
10일 단행된 국세청 인사특징의 또 다른 하나는 영남권과 충청권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것.
고위공무원단에 새롭게 진입해 이날 국장으로 임명된 이전환 기획조정관(대구), 조현관 서울청 조사3국장(대구), 임환수 중부청 조사1국장(경북 의성)이 모두 대구·경북(=TK)출신이다.
또 이종호 법무과장, 김은호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김종순 조사1과장, 양병수 법규과장, 박외희 서울청 조사2국1과장 등도 모두 영남권 출신.
이와 함께 한 청장의 핵심라인에 속하는 이병국 서울청 조사1국1과장, 정환만 감찰과장, 서대원 세원정보과장, 심달훈 재정기획관, 구돈회 소비세과장 등은 충청권 출신이다.
충청권 출신에는 또 한 청장을 비롯해 조성규 중부지방국세청장, 김창섭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박의만 감사관, 김덕중 서울청 조사1국장, 김경수 대변인 등이 있다.
■ 전산직 간부의 실험적 인사(?)
조용하게 치러진 10일 인사에서 국세청 사람들이 '설마'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창숙 국세청 전산운영과장을 인천세무서장에 임명한 것.
대통령령으로 바꿔야 하는 국세청 직제까지 바꿔가며 이 과장을 그것도 수도권 세무서장에 임명했다는 소식에 국세청 사람들은 저마다 '뭔가 있는 게 아니냐'며 귀동냥을 해가며 상반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과장은 서기관이긴 하지만 '전산직'이기 때문에 과거엔 '일반행정직'만 임명되는 세무서장에 임명될 수 없었다. 전산직에서 컴퓨터만 돌리다 보니 세정경험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
이 과장의 임명에 수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장의 뜻'을 전폭적으로 믿고 있다. 납득할 수 없지만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겠냐는 것. 또 세무서장은 기관장이기 때문에 세정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기에, 전산직 임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부서로 갈 수 있는 일반직과는 달리 전산직은 고정돼 있는 것이 특징. 이에 따라 지금까지 수직적인 승진인사는 있을 수 있어도 수평이동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세청에서 전산직 공무원의 경우 올라가는 통로가 협소해 인사적체가 극심했다. 뭔가 물꼬를 터야 했을 상황이다. 게다가 이 과장이 맡겨진 일을 깔끔하게 척척해내는 능력도 있었다는 평가다.
한 청장이 국세청 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간부의 비율을 높이고, 전산직 직원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이번 인사가 필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 과장은 세정경험이 없다는 점을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세무서장은 몇 개 시 군을 관할하며 지역경제인에게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기관장이다.
이 때문에 세무서장은 관내 경제인들과 수시로 교류를 갖고 각종 강연이나 조세전문가인 세무대리인들과도 세정협력을 위해 수시로 간담회를 가져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올라오는 세무서 과·계장에게 현안관련 결재를 해주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줘야 할 책무도 있다. 세무서 직원들에게는 담임선생님으로 통할만큼 직원들 노하우도 키워줘야 한다.
국세청 사람들은 이 과장이 과연 이런 부분을 소화할지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꼭 서장으로 보내주고 싶었으면, 세정을 널리 볼 수 있는 세원관리국 과장으로 보임시켜 세정경험을 쌓게 한 뒤에 보임시켜도 늦지 않은데"라는 훈수도 나온다.
또 세정경험이 없는 사람을 세무서장에 임명한 것이 전례가 돼 다른 부처에서 세무서장 자리를 달라고 밀고 올 때 거부할 명분이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청장의 이번 실험적 인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관전포인트의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