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배럴당 147달러로 고점을 찍었던 유가가 단 한 달 만에 35달러가 빠지는 급락세에 접어들었다.
이런 급락세를 일반적인 경향으로 속단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유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던 올해 상반기 미국을 위시한 원유 수입국과 산유국이 내놓은 고유가 해법을 지금 되돌아보면 산유국의 주장에 무게가 쏠린다.
산유국이 산유량을 거의 증산하지 않았는데도 국제 유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불안해지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과 5월 잇따라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 유가를 떨어뜨리기 위해선 산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을 가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에 고유가 위기까지 겹쳐 조바심이 난 미 행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산유량 증산만이 유가를 진정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산유국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산유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유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증산 압력이 사우디 국왕은 두 번 모두 "시장 상황에 따라 산유량을 늘릴 수 있으나 현재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잡혔다"고 답했다.
사우디 국왕은 당시 "현재 고유가는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제 투기자본이 원유 선물 시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카타르 에너지 장관 모하메드 살레 알-사바는 6월 18일 dpa 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장의 공급량이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입국 국민이 주유소 밖에서 줄을 길게 서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물론 지난 6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에 맞춰 사우디는 산유량을 일일 20만 배럴 정도 늘린다고 발표했긴 했지만 유가 상승행진을 멈추진 못했다. 그저 국제사회에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됐다.
이란을 주축으로 한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 `반미 산유국 전선'은 고유가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국제 원유 거래의 표준 통화인 달러화가 약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산유국들은 또 산유량을 늘리라는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장래의 수요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막연히 거대한 자금을 들여 산유량을 늘리느냐"고 대응했었다.
유가가 진정국면인 최근 한 달새 시장 전문가들의 판세 분석을 보면 유가가 하락하는 것은 국제 경기 침체로 원유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약세를 거듭하는 달러화의 가치가 반등하는 흐름은 유가 하락과 시기적으로 궤를 함께 한다. 달러화 강세로 원유 시장에 몰렸던 자금이 환율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가 상승기였을 때는 이란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위기 등 지정학적 변수가 있을 때마다 이를 지렛대 삼아 급등했지만 최근 그루지야 사태 같은 악재에도 유가 하락이 멈추지 않는 점은 투기 자본의 `농간'이라는 산유국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현재 유가 하락에 대한 어느 분석을 들여다 봐도 그간 미국의 주장처럼 "공급량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