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긴급 구제금융법안의 통과 과정에서 기업 인수시 인수자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내용의 수정안을 슬그머니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WP는 그로 인해 미국 기업들, 특히 은행업계가 부실 은행에 대한 인수 과정에서 최대 1천400억달러의 이익을 보게 됐지만 그동안 이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로비를 벌여 왔던 은행측 인사들도 갑작스런 법률조항 수정에 놀라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문제가 된 부분은 미국 연방세법 382조.
1986년 신설된 이 조항은 부실 기업을 인수한 뒤 피인수 기업의 손실을 인수 기업의 이익과 혼합시켜 법인세 부담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시도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당연히 미국 재계는 정부가 불필요하게 기업 활동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고 반대했고, 이후 재계 로비스트들은 이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런데 7천억달러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 법안이 미국 하원에서 한차례 부결된 뒤 상원에서 먼저 가결되고 다시 하원을 통과하는 우여곡절 속에서 '소유권 변동이 있기 2년 이전에 실시된 출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연방세법 382조에 반영됐다.
미국 재무부는 이 내용을 지난 9월 30일자 공고를 통해 발표했지만 금융위기의 파도가 한참 높아지던 당시에는 일부 친 기업 법조인들을 빼놓고 이 수정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주목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형 은행들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는 미국 법무법인 존스 데이의 캔더스 리지웨이 대표변호사는 WP와의 인터뷰에서 "20년간 세금 관련 업무를 다뤄 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며 "세무 종사자들의 대부분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의 앤드류 드소우저 대변인은 재무부가 세법 조항을 해석하고 기업들에게 세법상의 기준을 제시할 권한을 갖고 있다며 이번 일이 시장의 "안정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해명했다.
그는 연방세법 382조 내용 수정과 관련된 논의가 지난 8월부터 시작돼 왔다면서도 "절대로 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정과 관련된 요구를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도산 위기로 휘청거리던 와코비아은행의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씨티그룹이 지명된 직후 재무부의 세법 조항 수정 공지가 나온 점을 지목하며 수정된 조항이 '웰스파고 조항'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씨티그룹은 지난달 초 와코비아 인수를 포기했고 와코비아는 웰스파고의 수중으로 들어갔는데, 법무법인 존스 데이는 바뀐 세법 내용 덕에 웰스파고가 250억달러 정도의 이익을 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화당 찰스 그래슬리 상원의원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은 뒤늦게 세법 조항이 바뀐 것을 알고는 격분하기도 했지만, 의원들은 정작 이런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데는 소극적이다.
그래슬리 의원과 민주당의 찰스 슈머 상원의원은 이번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이 일이 불법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세무 전문지 택스 애널리스츠에서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리 셰퍼드 변호사는 "의원들이 9.11 테러 이후 비애국적이라는 말을 들을까봐 주저했듯이 이번에는 금융위기 회복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 싫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