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밖에서 국세청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국세청 직원들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는 이야기가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세청 하면 누가 뭐래도 서슬퍼런 세무조사권을 휘둘러 '탈세 납세자'를 벌벌 떨게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국가정보원과 검찰 그리고 경찰과 더불어 국세청은 4대 사정기관이나 권력기관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올 들어 특히 올 하반기 들어서는 국세청의 서릿발같은 이미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금을 거둬들이는 '징세 활동'보다는 오히려 정부기관 중에서 국민에게 돈을 퍼주는 대표적인 기관이 돼버렸습니다.
올 하반기 이후 국세청이 환급해주는 돈의 규모는 자그만치 4조281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추석을 바로 앞뒀던 지난 9월 초 국세청은 '잠자는 세금을 찾아준다'며 외판원과 학습지교사 등 139만명에게 소득세 환급금 711억원을 지급, 따뜻한 추석을 보내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돈의 규모가 점점 불어나 10월부터 신청을 받은 1톤 이하 소형화물차를 가진 180만명에게 유가환급금으로 10만원씩 모두 1800억원의 돈을 풀어줄 예정이고, 이달부터 근로자를 시작으로 내달 자영업자·일용직·퇴직자에게 3조4000억원을 내줄 계획입니다.
또 내달 15일 이전에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 세대합산 과세부분의 위헌 결정에 따라 6300억원의 세금을 되돌려줄 계획이니, 이들을 모두 합치면 4조2811억원 규모의 돈이 국세청에서 나가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국세청이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유가환급금 관련자 1750만명과 우유배달원 등 139만명, 소형화물차 소유자 180만명, 종부세 20만명 등 모두 2089만명이나 됩니다.
이러다 보니 지금 국세청 사람들은 외형 5000억원 미만의 기업에 대해선 금융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전면 세무조사 유예를 선언한 터라 충분한 여유시간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온통 돈 푸는 일에 매달려 있는 모습입니다.
국세청 직원들 스스로 "우리가 세금을 거둬들이는 기관의 직원인지, 곳간에 쌓아둔 재물을 골고루 나눠주는 복지기관의 직원인지 정체성에 의심이 들 때가 있다"며 일이 많은 것을 빼면 그리 싫지만은 않은 표정들입니다.
국세청은 또 내년부터는 저소득 근로자 지원을 위한 근로장려세제(EITC) 정책의 중심에 서서 본격적인 복지정책도 펼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할 국세청 직원들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