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세청에 긴급투입, 국세청 변화를 주도해 온 백용호 국세청장이 지난 16일로 취임 6개월을 맞았다. 일수로 따지면 180일.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백 국세청장의 국세청은 상당히 많은 변화의 징조들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버려진 것이 있다. 바로 '보여주기 식 변화'다.
백용호 국세청이 추진한 변화는 '실무형 변화' 즉, 실질적인 변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역대 국세청장들이 즐겨 사용했던(?) 뚝딱 만들어낸 임시방편적 개혁조치 등은 최소화됐다.
무엇보다 '인식변화'의 기틀을 만들어 냈다는 것도 높게 평가할 부분.
악습처럼 남아 언제든 문제의 소지로 불거질 수 있는 인사청탁의 고리를 끊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국세청장 스스로 제왕적 권력(인사권)을 포기했다.
또한 권위적 국세청장이 아닌 '직원친화적' 국세청장 이미지로 직원들이 대접받는 조직문화 조성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국세청의 변화는 아직 시험대에서 내려오지는 못했다. 지난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면 올해는 반전된 분위기를 완전히 정착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핵심은 백 국세청장이 직원들의 주인의식과 열정을 얼마나 더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 변화추진의 원동력-'인사', 그리고 '본분'= 교수출신으로 국세청 조직과 인연이 전혀 없던 백 국세청장이 위기의 국세청 변화를 위해 꺼내든 카드는 많지 않았다. 다만 소수의 카드들은 국세청에 가장 필요했던 '안성맞춤 카드'였다.
가장 먼저 손댄 부분은 인사. 국세청은 '압정형 조직'으로 지칭될 만큼 승진자리가 적다. 그만큼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극심, 학연.지연을 활용한 청탁문화가 공공연한 비밀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사실.
백 국세청장은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소를 위해 국세청장에게 집중된 인사권의 일부를 포기했다. 아울러 학연.지연을 타고 흘러 들어온 인사청탁을 과감하게 잘라냈다.
실제로 지난해 취임 후 실시한 서기관급, 사무관급 승진인사에서 백 국세청장은 여러 루트를 타고 온 인사청탁을 거절했고 인사청탁을 시도한 이들을 전원 승진대상에서 배제하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또 한가지는 국세청 본연의 임무, 즉 본분의 강조다. 백 국세청장은 취임 이후 틈 나는대로 "국세청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고 강조해 왔다. 국세청 본연의 업무는 '탈세방지'와 '납세서비스' 등 두 가지다.
현재 국세청은 세무조사 시스템(대기업 4년주기 순환조사 등)을 개선하는 한편 역외탈세 행위, 자료상 행위, 변칙 상속증여 행위 등 탈세유인 차단을 중점세정과제로 선정해 국세행정시스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납세자보호관을 신설하는 등 납세자권익보호 분야에도 무게중심을 두고 있으며 세미래 콜센터, My NTS서비스 등을 구축, 납세서비스도 세련화 하고 있다.
이 같은 '본분'의 강조가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정권의 시녀, 권력기관 국세청'이라는 불명예스런 수식어를 떼어내기 위한 것.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사라지지 않는 '부정부패'= 이 같은 변화의 성과물은 평가 받을 만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의 고질적 병폐인 금품수수 등 '부정부패'의 고리는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국세청장 스스로 "(국세청장으로)직접 와서 보니 통제가 안될 정도다"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국세청 내부의 부정부패가 여전한 상황. 지난해 연말 터져 나온 안원구 前국세청 국장 사건을 비롯해 최근 일선 세무서 하위 직원이 4000만원의 금품을 수수,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터지는 등 '바람잘 날'이 없다.
백 국세청장이 지난 11일 전국세무관서장회의 인사말을 통해 "청렴성 제고를 위한 의식개혁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세공무원의 청렴성과 도덕성이야말로 국민신뢰의 뿌리"라라며 의식변화를 강하게 주문한 것도 부정부패 사건이 내포한 높은 '유독성'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국세청 특유의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부정의 부스러기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말처럼 쉽게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기는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 "납세자 배려, 세무행정 시스템 변화 고삐 죄야"= 현재 국세청 안팎에서는 백용호식 국세청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간평가'에 만족하지 말고 고삐를 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특히 납세자에 대한 배려와 세무행정 시스템상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조세전문가는 "백 국세청장이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국세청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납세자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가 아직도 많이 어려운 만큼 중소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배려가 더 있어야 한다"며 "세무조사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특히 불성실 혐의가 있는 중소기업만 조사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조세학자는 "이제 시스템 쪽의 변화에 무게를 더 두어야 할 것"이라며 "세법이 애매하게 돼있어 일선 실무자의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주사(6급)행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쟁송이 많은 부분만 우선 뽑아내 일관성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