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심판원이 4244억원대 국민은행의 조세심판청구 사건과 관련해 지난 25일 300억원 규모만 인정해줬을 뿐, 대다수를 차지하는 3900억원에 대해선 기각으로 최종 결정했다.
심판원의 결정은 특히 국민은행이 제기한 조세심판청구 금액규모가 1975년 심판원 개원이래 사상 최대였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최대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또 심판원이 어떤 이유로 대다수 금액이 걸린 부분에서 기각으로 결정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번 국민은행과 관련해 조세심판원에서 다룬 조세심판청구는 4개의 쟁점이 걸려 있었지만, 최대 쟁점은 국민은행이 지난 2003년 합병한 국민신용카드의 1조2664억533만원 규모의 대손충당금과 관련돼 있다.
대손충당금 부분에 걸린 세금이 사실상 이번에 심판원에서 기각 결정한 3900억원의 거의 전부라고 추산될 정도다.
국민은행이 국민신용카드를 흡수합병하면서 대손충당금과 관련해 무슨 거래를 어떻게 했기에 문제가 됐을까.
심판원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지난 2003년 9월 30일 국민신용카드를 흡수 합병할 당시 국민신용카드는 1조3597억원의 이월결손금을 갖고 있었으며, 갖고 있는 채권 13조3385억원에 대해서는 일부 떼일 우려가 있다고 봐 대손충당금으로 1조2664억원 만큼 쌓아두고 있었다.
국민신용카드의 이월결손금 1조3597억원을 승계만 할 수 있다면 국민은행은 합병 이후 일정기간 이월결손금을 털어 내며 세금을 줄일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세법에서 정한 이월결손금 승계요건을 채우지 못해 승계할 수 없었던 상황.
자체검토를 통해 이월결손금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국민은행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은 채권 13조3385억원에 대한 대손충당금 1조2664억원.
이때부터 국민은행은 대손충당금을 이용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벌인 것으로 심판원은 보고 있다.
심판원에 따르면 은행은 지난 2003년 5월 세무상 이월결손금을 승계하기 위해 국민신용카드가 이미 적립해 놓은 대손충당금을 환입하도록 한 후, 합병후 국민은행이 대손충당금을 다시 장부에 올려 영업외비용으로 계상하는 합병처리방안에 대해 회계법인의 의견을 물었다.
회계법인의 답변은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대로 지분법평가법에 의한 회계처리가 바람직하다"면서도 "질의한 방안에 의해 결산한 경우에도 감사의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결국 국민은행의 방안은 회계기준위반이라는 것이다.
심판원이 밝힌 이때부터 국민은행이 취한 행위들을 보면 과연 국민은행이 국민의 대표은행이라는 위상을 갖는 은행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의심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다.
회계법인으로부터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을 받은 국민은행은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2차례나 연이어 요청하면서 중요한 사실은 밝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판원은 "국민은행이 국세청에 1차 유권해석을 요청할 땐 국민신용카드가 이미 설정해 놓은 대손충당금을 환입하고 이를 합병 후에 국민은행에서 비용으로 회계처리할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국세청에 2차 유권해석을 요청할 땐 대손충당금을 임의로 환입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국민신용카드의 채권을 장부가액으로 승계하지 않고도 장부가액으로 승계한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국세청에 질의했다는 것이 심판원의 설명.
국민은행은 특히 이 과정에서 회계담당자가 합병관련 합병세무전략과 관련해 은행장에게 "기업회계기준에 위배될 수 있다는 외부감사인의 의견이 있었으며, 국세청에 사실관계에 입각한 질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보고한 것도 드러났다.
은행장과 회계담당자들의 조직적 시도는 곧바로 금감원의 종합감사를 통해 드러났고, 금감원은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은행장을 포함해 재무담당 부행장과 감사 그리고 팀장3명에게 무더기 징계조치를 내리고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에 이른 것.
당시 금감원은 "국민은행은 '법인세 회피를 목적'으로 국민신용카드가 설정해야 할 대손충당금 1조2664억원을 임의 환입하거나 적립하지 않고 결산하도록 요청했고, 합병 이후 이 충당금을 국민은행이 다시 설정해 비용으로 처리한 것은 회계기준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불똥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도 이어졌다. 국세청은 2007년 2월부터 4월까지 국민은행에 대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치 거래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면서, 이 같은 일련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국세청은 국민은행이 국민신용카드로 하여금 이미 설정해 놓은 대손충당금조차 환입하도록 한 뒤 채권의 가치를 높게 만든 뒤 이를 인수한 것은 오로지 조세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채권을 고가인수하거나 불량채권을 인수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국민신용카드의 채권가운데 자산건전성분류기준에 따라 정상∼회수의문으로 분류되는 8428억594만원은 고가양수에 해당하고 추정손실 4235억9939만원은 불량채권 인수에 해당된다며, 이를 합친 1조2664억원에 대해 세법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했다는 설명이다.
국세청의 세금부과에 대해 국민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은행은 "국세청이 적용한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은 기업회계기준 위배여부에 관계없이 조세법적인 측면에서 부당한 것이라고 보일 때에 한해 적용하는 것"이라고 따졌다.
또 국민신용카드와의 합병에 있어 증권거래법에 따라 산정한 주식가격은 시가로 인정되므로 그 가격으로 합병대가를 산정하면 부당행위계산부인 대상이 되지 않고, 국민신용카드의 대손충당금을 승계받아 손금에 산입한 것은 납세자의 선택사항이어서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을 적용할 땐 이익분여가 필수요건인데, 이익분여가 없는 만큼 국세청 과세는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심판원은 "국세청 과세는 주가와 연계된 합병비율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합병이후 국민은행의 부당한 대손충당금 손금산입으로 이월결손금 승계요건 미충족을 회피하려는 부당행위를 부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은행이 합병결의 당시에는 국민신용카드가 설정한 대손충당금이 반영된 주가를 토대로 합병비율을 산정하고, 합병결의 직후 세부담 회피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전액 환입하고 이후 미설정해 부실자산의 고가매입과 유사한 부당행위 등으로 봐 과세했다는 것.
또 국민은행이 이월결손금을 승계받지 못하자 조세회피목적으로 국민신용카드가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을 국민은행이 승계해 손금에 산입한 것으로써 국민은행은 조세회피만을 목적으로 기업회계기준을 위반해 금감원 처벌을 받은 것으로 봐서도 경제적 합리성이 결여된 부당한 행위로 보인다고 심판원은 지적했다.
심판원은 특히 "납세자의 선택에 따라 합병의 경우 대손충당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세법이 바뀐 것은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계상한 대손충당금 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조세회피목적으로 고의로 대손충당금 등을 전혀 적립하지 않은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심판원은 "국민은행이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처벌을 받은 것 등을 감안할 때 국민은행의 회계처리는 경제적 합리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세청 과세에는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한편, 심판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조세전문가들은 "국민은행의 합병관련 회계처리는 금감원이 문제삼아 은행장까지 문책경고 했던 사안"이라며 "심판원이 국민은행 손을 들어주면 같은 정부기관인 금감원과 심판원의 이견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고 예견됐다는 반응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민은행의 조세불복 청구는 결국 소송으로 비화돼 법정에서 과세의 적법성을 가리지 않겠느냐"며 "국민은행이 세금을 줄여보려고 했던 여러 노력들을 법정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무척 관심이 가는 부분"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