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9개월 지나…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젠 특검 필요하다 생각 무리 아니지 않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 반복하고 싶지 않아 용기 내 부탁드린다"
군인권센터 "특검법 수용은 순리…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 통과되자 방청석에 있던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7일 군인권센터는 해병대 예비역 2명이 윤 대통령에게 채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를 담아 공개편지를 전해왔다며 해당 편지를 공개했다.
이들은 편지에 "필승, 저희는 해병대 제1사단 故채 상병의 전우, 예비역 해병 A, B"라며 "채 상병과 함께 군 생활을 했고, 그를 떠나보낸 후 만기 전역했다"고 운을 뗐다.
이들은 "2023년 7월 19일 아침, 저희는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으라는 지시에 따라 하천에 들어갔다. 위험한 작전이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늘 그랬듯 함께 고생하고 다 같이 부대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그러나 채 상병은 저희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고 상기했다.
이어 "그날 채 상병과 저희 두 사람, 그리고 여러 전우들은 무방비 상태로 급류에 휩쓸렸다"며 "저마다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 사라져가는 채 상병이 보였다. 살려달라던 전우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채 상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전우인 저희에게 남은 몫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채 상병의 죽음을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질 거라며 눈물을 참던 중대장님은 여단의 다른 보직으로 전출되셨고,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대대장님은 보직해임 되어 떠나셨다"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위험하고 무리한 작전을 지시했던 사단장님과 여단장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채 상병 특검법을 '죽음을 이용한 나쁜 정치'라고 표현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뉴스로 접했다"며 "하지만 이런 저희마저 채 상병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발생하고 벌써 9개월이 지났고 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피해 복구를 하러 간 우리를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울 만큼 급류가 치던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또 "둑을 내려가 바둑판 모양으로 흩어져 걸어 다니면서 급류 속에서 실종자를 찾으라는 어이없는 판단을 내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현장과 지휘 계선에 있었던 모두가 누구의 잘못인지 잘 알고 있는데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도 물었다.
이들은 "저희와 채 상병이 모두 내가 나고 자란 나라를 지키고자 남들이 말린 힘든 해병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며 "이런 저희에게, 그리고 해병대를 믿고 하나 뿐인 아들을 맡기신 채 상병의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나라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눈앞에서 채 상병을 놓쳤던 그때처럼, 채 상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용기 내 부탁드린다"며 "대통령님.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편지를 마쳤다.
군인권센터는 이들의 편지를 전하며 "두 예비역 해병이 전해 온 진심이 특검법이 통과되기 무섭게 '특검법 통과는 나쁜 정치'라고 맹비난한 대통령에게 과연 '나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검법 수용은 순리다.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 2일 '채상병 특검법'으로 불리는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통령실 정진석 비서실장은 같은 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국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