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해 있는 LG트윈타워. 일반인들에게는 ‘쌍둥이 빌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트윈타워는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이 동업형태로 사업을 시작한 ‘럭키금성’을 연상케하며 LG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LG그룹이 2005년말 4억달러를 투입해 중국 베이징에 건설한 트윈타워도 일반인에게 자리잡힌 트레이드마크를 부각시켜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엔 브랜드와 트레이드마크를 상품과 연결시키면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매출도 올릴 수 있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왼쪽)와 베이징 LG트윈타워
그러나 2009년 애플의 아이폰 등장은 기존의 마케팅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애플의 아이폰은 복잡한 기능을 단순화시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자연 애플 마니아 층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그 제품이 왜 좋은지를 잘 모르지만 그냥 좋다고 느끼고 있다. 제품의 기능이 경험을 통해 쓰기 편하도록 반영되어 있고 바로 UX(소비자 경험)의 본질이기도 하다.
아이폰 열풍은 규모의 경제만 갖고 설명하기 어렵다. 규모의 경제라는 잣대로 보게 되면 세계 최대 휴대폰 제작사였던 노키아가 애플을 눌렀어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국내 처음으로 만들어진 UX디자인 협회인 UPA코리아의 최재현 회장(유투시스템 대표)는 “애플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UX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면서 “UX는 사용자에게 감동을 주어 기업에 대한 신뢰 및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제품 구매력의 경쟁력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세계 휴대폰 시장 세계 3위 기업의 ‘굴욕’ 속사정은?
2009년 말 LG전자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랐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시장전문조사기관인 IDC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LG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LG전자 점유율은 ‘Other(기타)’에 분류되는 치욕을 당했다.
LG전자의 굴욕은 해외에서 뿐만이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팬택과 국내시장 점유율 2, 3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만큼 1위인 삼성전자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 한 요인으로 UX를 꼽고 있다. 변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
UX를 강화해 실속을 챙긴 회사로 삼성전자를 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08년 초반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내에 UX 파트를 신설했다. 햅틱폰 등 혁신적인 제품들은 UX 파트가 주도해 만든 제품이다. ‘연아의 햅틱폰’은 출시와 동시에 50만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올렸다.
애플의 아이폰보다 상품 출시가 뒤쳐졌던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탈환한 저력에는 UX의 힘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자료 : IDC World Wide Mobile Phone Tracker, 2012년 5월 1일
팬택은 생활 속의 행동을 반영한 제품이 자연 소비자의 눈길을 더 끌게 된다는 전략하에 UX 활용을 높이고 있다. 팬택의 한 관계자는 “2년여 전인 2010년 초반부터 UX팀을 운영해 왔다”고 말했다.
LG전자는 2010년 12월 구본준 부회장이 소프트웨어디자인경영센터 산하에 UX혁신디자인연구소를 신설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스마트폰 개발의 핵심 역량인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구 부회장의 의지가 비로소 반영된 것이다.
UX혁신디자인연구소 역할과 관련, LG전자의 관계자는 “전사차원에서 UX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소비자 연구결과를 다양한 스마트 기기에 적용해 제품 간 UX 통일성을 높이고 소비자 감성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UX파트에 근무하는 직원은 대략 150여명, 팬택의 UX팀에서 일하는 사람은 100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소속 인원수를 밝힐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UX를 소홀하게 된 결과는 곧바로 제품과 소비자들의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LG전자는 최근 LTE폰 '옵티머스 it'을 일본에 출시했다. 박종석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MC) 사업본부장은 "다양한 LTE 제품 라인업을 선보여 'LTE=LG'라는 인식을 일본 시장에서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의 야심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등장하고 있는 LG전자 휴대폰 사용자들의 경험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전문비교사이트인 ‘뽐뿌’의 휴대폰 포럼에서 ‘장키’라는 필명의 사용자가 올린 ‘옵티머스 LTE 3개월 사용후기’라는 글은 LG전자의 UX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터치감이 정말 좋지 않아 답답하다”면서 “1.5G 듀얼코어라고 하는데 정말 제성능 잘 쓰는지 모르겠고 어플 실행시 너무 느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전에 사용했던 제품에 비해 터치감, 속도, 와이파이 속도, 베터리가 비교되서 그런건지 너무 답답하게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LG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옵티머스 LTE Ⅱ
또 ‘로휴’라는 필명의 사용자가 올린 ‘옵티머스는 정말 애증의 브랜드’라는 글은 제품에 대한 불평과 함께 애프터서비스도 문제삼고 있다.
그는 “자잘한 버그들이랑 노이즈 정도야 애교로 쳐준다해도 액정을 쓰레기 같은 저질 부품으로 쓴 것은 용서가 안된다”면서 “교환을 거절하며 시력이 나쁘다고 한 LG서비스센터에 두 번 어이없다”고 글을 올렸다.
UX는 기술과 기능에 의존하는 패러다임을 넘어 소비자를 정확하게 분석한 후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기능 향상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사용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다.
LG경제연구원의 강현지 선임연구원은 ‘모바일 시대의 경쟁력, 스마트한 UX’ 보고서를 통해 “단순 입출력 수준의 사용자 환경을 넘어 사용자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UX를 편리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최첨단의 기능이라도 혼란스럽게 제공되면 사용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없다”면서 “UX는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한 전환장벽을 쌓을 수 있고 더 나은 서비스 개발을 위한 정보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故 구인회 회장은 UX 선구자, 고인의 유지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이후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한다)’란 광고를 전면에 내세웠다. 잡스는 줄곧 애플이 창의적인 회사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애플의 로고는 스티브 잡스가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념하기 위해 고안했다는 얘기도 있다. 튜링은 세계 첫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해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를 이끌었지만 동성애자란 비난 때문에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먹고 자살했다.
애플의 아이폰은 소비자들로부터 ‘애플답다’라는 평을 듣는다. 애플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좀처럼 애플제품을 떠나지 않는다. 창의성에 UX를 전면에 내세워 아이폰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휴대폰 성능을 자랑했던 기존의 마케팅은 한순간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다.
90년대 후반 삼성도 제품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광고카피를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삼성의 제품이 사람과 기술을 이어주는 UX의 단계로까지 나아가기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LG는 창업주인 故 구인회 회장의 선견지명 덕분에 고객의 심리를 가장 잘 읽고 반영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연암(구 회장의 호)은 장삿길에 나서면 가장 먼저 시장을 살폈다. 연암이 비단을 찾는 여인네들의 다양한 취향을 파악해 진주 포목시장을 단숨에 장악했다는 것은 오래된 일화다.
부산시 진구 연지동 옛 LG화학 공장터에는 연암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는 창업주의 어록이 담겨져 있다. “싸게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제품이 성공하자면 좋게 만들어야 한다. 또 제품이 잘 팔린다는 이유 만으로 결코 값을 흐리지 말라. 고객과의 꾸준한 관계 만이 기업의 생명이다.”
‘고객과의 꾸준한 관계만이 기업의 생명이다’고 외친 창업주는 누구보다 UX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UX를 아이폰에 접목한 시기보다 무려 40~50년이나 앞선 것이다.
LG전자 경영진은 창업주의 유지가 제품 생산 현장과 마케팅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