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다시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것은 우리 경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상황판단에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엔진이 식어가고 내수마저 움츠러들면서 우리 경제의 두 기둥이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지갑 열기 무섭다'…내수 위축 여전
7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보다 3.4% 증가해 최근 부진한 모습에서 탈피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와 다르다.
소매판매액지수를 끌어올린 건 가전제품 등 내구재다. 전달과 비교해 내구재 판매가 7.1% 크게 늘었다. 기록적인 불볕더위로 에어컨이 잘 팔렸고, 런던 올림픽이 TV 구매 수요를 자극한 덕분이다. 계절 또는 일시적인 요인이 작용한 만큼 경기 회복에 따른 소비 증가라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대형마트의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달보다 0.2% 올랐다. 그러나 3월(-0.4%), 4월(-4.2%), 5월(0.8%), 6월(-1.8%)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부진한 모양새다.
전년 동월비로는 4월(-1.3%), 5월(-2.6%), 6월(-4.5%), 7월(-3.5%) 등 넉 달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불황에 강한 생활필수품을 주로 파는 대형마트로서는 이례적인 부진이다.
8월 수입액은 작년 같은 달보다 9.8% 감소한 409억3천만 달러다. 작년 2월(364억달러) 이후 18개월 만에 최저치다.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있다.
8월 소비자동향지수(CSI)는 99로 7개월 만에 기준선(100) 아래로 내려갔다. 수치가 100을 밑돌면 소비자들이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여기엔 자산 가격 하락이 한몫하고 있다.
7월 전국의 아파트 분양가는 금융위기 직전의 71.3%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5월 고점 대비로 150조원 가량 증발했다. 자산가격 하락은 소비자 심리에 영향을 줘 소비를 감소시키는 `역자산 효과'를 일으켰다.
실제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에 그쳐 소득 증가율(6.2%)에 못 미쳤다.
처분가능소득과 비교해 소비지출이 얼마나 했는지를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은 2분기 74.1%로 1년 전보다 2.3%포인트 내렸다. 해당 통계를 전국 단위로 낸 2003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세계 경기 먹구름 언제 걷히나…수출 부진 `진행형'
우리 경제의 동력인 수출에는 비상등이 켜진 지 오래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8월 수출은 429억7천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6.2% 줄었다. 월별로 2개월째 감소했다. 올해 상황을 보면 2월과 6월을 제외하고 줄곧 전년 동월 대비로 감소했다. 거의 매달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지난해와는 대조적이다.
1~8월 누적기준으로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줄었다. 지난해 1~8월엔 전년 동기 대비로 23.5%나 증가했다.
품목별로 보면 우리 주력 품목의 부진함이 두드러진다. 8월 실적을 보면 작년 같은 달보다 선박이 34.2%, 자동차 21.7%, 무선통신기기는 26.7%나 각각 급감했다. 기초 원자재에 해당하는 철강(-7.4%)과 반도체(-1.1%) 수출도 줄었다.
지역별로 봐도 수출이 좋은 곳이 없다. 우리나라 제품을 가장 많이 사들이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8월(1∼20일)에 5.6% 감소했다.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은 2.1%, 재정위기로 어지러운 유럽연합(EU)도 9.3% 각각 감소했다.
올해 들어 무역수지도 분위기가 수상하다. 첫 달인 1월 20억3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4개월 만의 일이다.
이후 2~8월 줄곧 흑자를 유지하고 6월에는 49억900만달러나 됐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든데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불황형 흑자마저도 7월 27억5천600만달러에 이어 8월엔 20억4천만달러로 그 폭이 감소하는 추세다.
대외 경기 전망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짙다.
중국은 2분기 성장률이 7.6%였다. 분기별 성장률이 8% 밑으로 떨어진 것은 3년 만의 처음이다. 하반기도 불투명하다. 8월 HSBC의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가 9개월 사이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제조업의 구매담당자들이 앞으로의 경제상황을 나쁘게 본다는 뜻으로, 3분기에도 의미 있는 반등이 어렵다는 관측이다. 일부에선 경착륙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의 지속으로 지난 7월 중국의 대(對) 유럽 수출은 작년 동월보다 13.5%나 줄었다. 한ㆍ중 교역에 가공무역 비중이 높은 만큼 중국의 수출 부진은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차례 양적완화 조치로 2조3천억달러 상당의 국채 등을 사들였으나 경기 반등세는 예상보다 강하지 않다. 월간 실업률은 3년 이상 8%를 웃돌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이른 시일 안에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벤트를 줄줄이 앞두고 있어서다.
오는 6일 유럽중앙은행(ECB)은 월례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스페인ㆍ이탈리아의 국채를 사들일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12일에는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럽안정화기구(ESM) 위헌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달 31일 스페인은 은행권 부실자산을 모아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내용의 은행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리스처럼 전면적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글로벌경제팀장은 "EU는 이미 위기가 상시화됐고, 결국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야 수출 경기가 회복된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강한 시기라서 세계 경기가 이른 시일 안에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